[강릉 무장공비 침투1년]악몽의 현장엔 관광객 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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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새벽녘 온 국민을 공포와 경악으로 몰아넣었던 북한 잠수함을 이용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오늘로 1년을 맞는다.

이 사건으로 숨진 피해자들의 유가족등 수많은 사람들은 1년이 지난 요즘에도 쓰라린 기억을 가슴속에 담은채 고통속에 생활하고 있으나 역사의 현장은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되는등 명암 (明暗) 이 엇갈리고 있다.

이 사건 이후 국방부의 전략 변화와 침투 1년후 현장의 모습, 공비를 신고했던 사람들의 근황을 알아본다.

추석연휴 첫날인 14일 오전 강릉시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에는 북한 잠수함이 좌초했던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려는 관광객들로 북적됐다.

이곳 좌초 해역에는 1년전 바위에 부딪쳐 좌초된채 파도에 따라 요동치던 북한 잠수함은 간데 없고 대신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한적한 해안이었던 이곳은 잠수함 침투사건 이후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수천여명의 관광객과 차량이 몰려드는 전국적인 안보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따라 강릉시와 통일원은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남.북 주민들의 한마당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이 일대를 통일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강릉시가 최근 확정한 통일공원 조성 사업계획에 따르면 당초 서울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할 예정이었던 북한 잠수함을 내년에 30억원을 들여 침투지점인 안인진리 앞바다에 3백2평규모의 보관소를 건립해 전시할 예정이다.

또 내년부터 2000년까지 총 2백80억원을 들여 이 일대 7만2천여평에 노획물등을 전시할 수 있는 안보전시관과 통일교육관.북한의 주택.문화유적 모형들이 들어서는 주제공원을 비롯, 북한 침투로인 등명낙가사 주변을 관광코스로 개발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무장공비가 아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도주행각을 벌였던 칠성산 일대는 1년전의 참상은 아랑곳없이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주민의 신고로 무장공비 3명이 아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사살된 강동면언별리 단경골 계곡에는 바위 곳곳에 유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어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짐작케 했다.

무장공비 사체가 나뒹굴었던 계곡 물가에는 여름철 행락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돗자리를 깔아놓은 흔적이 남아 있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또 군소탕작전이 펼쳐졌던 야산 곳곳에는 당시에 구축해 놓은 진지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주민 황기남 (49.담정그레이드관광농원 대표) 씨는 "무장공비 소탕작전으로 두려움에 떨었던 이곳 주민들이 이제는 애써 당시의 기억을 지우며 살아가고 있다" 며 "군인들이 작전종료후 정리를 철저히 해 추가적인 자연훼손은 없으나 한달 이상 계속된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칠성산일대에 뛰놀던 산토끼와 멧돼지.청설모.오소리등 각종 산짐승들이 자취를 감추는 엄청한 생태계 변화를 일으켰다" 고 말했다.

지난해 10월8일 산나물과 버섯을 캐러갔다 도주중이던 무장공비에 의해 한마을 주민 3명이 처참하게 살해돼 이 사건 최대의 피해지역으로 기록된 평창군진부면 탑동리. 유가족들과 마을주민들은 1년전 무장공비들의 만행을 가슴에 묻은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찾은 친지들과 추석을 지냈다.

당시 남편 (李英模.54) 을 잃은후 논밭은 다른 사람에게 소작을 준뒤 진부읍으로 이사한 문넙덕 (48) 씨는 "그때 받은 충격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오는 병을 앓아 고통을 겪고 있다" 며 "남편을 고향에 묻은후 그때의 아픈 기억도 함께 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잘 안된다" 고 고통스러워 했다.

이 마을 배희찬 (53) 이장은 "주민 3명이 한꺼번에 피살된 이후 한동안 탑동리 주민들이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여 생활했으나 이제는 모두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다" 고 말했다.

강릉 = 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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