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영광굴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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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굴비 하면 으레 전남 북서해안의 영광군을 떠올릴 만큼 보편화돼 있지만 실상 '영광굴비' 를 유명하게 한 것은 칠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산란 (産卵) 직전의 조기였다.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떼가 산란하기 위해 연평도 근해까지 북상하는데 4~5월께 법성포앞 칠산바다를 지나는 조기떼는 알이 가득 차고 맛이 으뜸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조기를 잡아 소금에 간을 한 뒤 말리면 천하일미의 굴비가 되는 것이다.

건강에 좋고 기운을 북돋워 준다고 해서 일찍부터 이곳에서 '조기 (助氣)' 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하나 확실치는 않고, 다만 '굴비' 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인종 (仁宗) 때의 이자겸 (李資謙) 은 두 딸을 비 (妃) 로 삼게 해 전횡을 일삼다 영광 법성포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이자겸은 이곳 굴비의 뛰어난 맛에 탄복해 이를 왕에게 진상했는데 왕이 맛을 보고 즉시 귀양을 풀었다는 것. 이자겸은 단지 맛좋은 굴비를 진상했을 뿐 비굴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굴비 (屈非) 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 후 영광굴비는 때마다 왕에게 진상됐으며 중국의 명.청 (明.淸) 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치게 됐다 한다.

굴비가 이곳 경제를 살찌게 해 얼마전까지만 해도 "돈 실러 가세/돈 실러 가세/영광 법성으로 돈 실러 가세" 라는 '굴비의 노래' 가 널리 불리기도 했다.

특히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굴비를 진설하는 관습이 시작된 이후에는 생산이 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참조기의 어획량이 점점 줄어들면서 영광굴비의 참맛을 즐기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민어과에 속하는 부세 (富世) 라는 물고기를 같은 방식으로 말린 가짜굴비가 판을 치는가 하면 제주도 해역 등 다른 곳에서 잡힌 조기가 영광굴비로 둔갑하기도 하더니 요즘엔 중국에서 대량 수입한 조기가 굴비의 주종 행세를 한다는 소식이다.

영광 사람들은 해풍.습도.일조량 등 법성포 특유의 조건에다 전래의 비법으로 굴비를 생산하기 때문에 중국산 조기를 쓰지 않는 한 영광굴비라 해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지만 맛이 다를 것은 뻔한 이치다.

진짜 영광굴비는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값도 엄청나다니 아무래도 올해 추석엔 굴비의 참맛 보기는 멀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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