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헌법재판소 결정이후 중간정산 요구 폭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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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월급쟁이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던 퇴직금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22일 헌법재판소가 퇴직금 우선변제조항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에 따라 앞으로는 '불가침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던 퇴직금의 지급도 불확실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직장인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망하더라도 퇴직금은 다른 채권에 앞서 우선 받을 수 있었던 보호조항이 사라짐에 따라 최악의 경우 퇴직금을 한푼도 못받는 사태까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일부 부실기업이나 부실징후가 보이는 기업에서는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받자' 며 사표를 제출하는 사례도 있는가 하면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구하는 곳도 급격히 늘고 있다.

올 상반기중 퇴직금 중간정산제를 도입한 회사만도 3백97개사 (노동부 집계)에 달하고 있으며, 특히 한보철강등 일부 법정관리 업체에서는 일찌감치 사표를 제출해 퇴직금을 요구하는 사원들이 증가하고 있다.

종퇴보험과 대출금의 상계도 쟁점이 되고 있다.

사측에서는 자금난으로 회사가 망하는 판에 종퇴보험을 담보로라도 대출을 끌어낼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노동계에서는 그러나 회사명의로 가입해 회사가 필요시 맘대로 운용할 수있는 종퇴보험대신 근로자 개인명의로 가입하는 퇴직연금의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다.

경영계와 노동계에서는 일단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법개정이 불가피한 퇴직금 최우선 변제기간의 범위를 놓고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재계는 기업이 파산할 경우 근로자가 다른 채권에 비해 우선해 퇴직금을 변제받을 수 있는 기간을 3년으로 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남홍 (趙南弘) 부회장은 "지난 4월 제정.공포된 소기업지원 특별조치법에서 퇴직금 우선변제기간을 3년으로 정한 만큼 이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 3년안이 불가피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이 8년안을 주장하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정식 (李正植) 기획조정국장은 "퇴직금은 근로의 대가로 발생한 임금채권이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 라며 "경영부실에 의한 책임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해 퇴직금마저 못받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고 밝혔다.

노동계에서는 이에따라 퇴직금의 안정성을 법적 보호장치로 임금채권보장기금의 신설.퇴직금의 사외적립.퇴직연금보험의 가입의무화등을 요구하고 있다.

9일 열리는 노사문제개혁위원회에서 퇴직금 우선변제기간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구체적인 입장이 정리되지 않을 경우 각 기업에서의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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