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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으면 먹지말라" 불교계 '울력' 수행방편으로 자리잡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일일부작 일일불식 (一日不作 一日不食)' .중국 당나라 백장 (百丈) 선사는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말라' 했다.

90세가 넘어도 일손을 놓지 않는 백장선사가 일을 못하도록 제자들이 농기구를 감춰버리자 이 한마디를 던지고는 그날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불가에서 수행의 한 방법으로 '울력 (運力)' 의 역사가 매우 깊음을 알수 있다.

울력은 여러사람이 힘을 합해 벌이는 노동을 말한다.

두레와 비슷하다고 보면 무방하다.

우리 불교계에서도 울력의 전통은 꽤 깊지만 산업화.기계화 등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한동안 흐지부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들어 자연친화와 환경문제 등이 논의되면서 불가에서도 울력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 다시 자리잡기 시작했다.

울력에 계절이 따로 있을까마는 아무래도 결실의 계절이 제격이다.

울력의 전통이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는 종단은 천태종. 총본산인 구인사가 자리잡은 충북 단양의 소백산 산자락에는 이맘때쯤이면 울력수행에 나선 스님들로 물결을 이룬다.

7만여평에 이르는 이 농장에서는 콩.옥수수.감자.고추.사과.배.포도 등 다양한 작물이 스님들의 손길로 거둬진다.

최근에는 조생종사과를 수확했다.

많을 때는 스님 1백여명이 동원돼 연2천 상자를 딴다.

울력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지고 있는 양산의 통도사에서도 이달 중순에 있을 벼베기 울력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경내의 정미소도 정비해야 한다.

스님 70여명이 2만2천평에 달하는 논에서 벼를 거둬들일 때는 선방.강원.종무소 없이 모두가 바쁘게 돌아간다.

통도사 방장인 월하 (月下) 스님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현장에 들러 후배 스님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질문을 툭툭 던지기도 한다.

이렇게 오가는 선문답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더러 있다.

천태종 종정인 김도용 (金道勇) 스님은 출가후 20년동안 구인사 농장에서 울력을 하면서 장좌불와 (長座不臥) 수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절생활 자체가 절약과 검소이지만 울력은 더욱 검소하고 절약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익히는 수행이다.

육체를 다스리는데도 더없이 좋다고 한다.

절간의 울력은 참으로 다양하다.

여름철 비가 퍼부으면 지붕도 고쳐야하고 산불이라도 나면 불을 끄는데도 동원된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지간한 사찰에는 밭일을 담당하는 원두 (園頭) 스님, 논일을 맡는 농감 (農監) 스님, 산을 관리하는 산감 (山監) 스님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감스님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울력의 시작을 알릴때도 옛날에는 큰 목탁을 두드리는 방법이 동원됐으나 요즘은 경내 방송등을 이용하는 것이 달라진 풍경이다.

비구니들의 울력으로는 수원의 봉영사와 청도의 운문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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