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장애 어릴 때 치유, 공부도 따라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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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가 지난해 도입한 ‘건강한 학교 만들기’ 사업은 정서·행동장애 학생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 특히 소외계층 아이들의 정서·행동장애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고, 기초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 가정의 어린이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시간이 적어 정서가 메마르기 쉽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한 부모나 조손 가정, 맞벌이 부부 가정의 아이들은 더 심각하다. 정서·행동장애가 있어도 보호자나 교사가 발견하지 못하고, 공부가 뒤처지기도 한다. 루돌프어린이사회성발달연구소 고윤주 소장은 “최근 발표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은 정신장애가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정서장애를 치료하지 않으면 ‘방과 후 학교’ 수업 같은 방식으로 낙오 학생을 구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서장애 학생을 치료하려면 지역 사회의 도움도 필요하다. 민웅기 고양시교육장은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아이들의 정서·행동장애가 문제가 되고 있다”며 “정확한 진단을 통해 아이들을 조기에 치료하기 위해 이 무료 진단·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 1학년에 이어 6학년 때도 같은 검사를 해 치료과정을 점검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은 이런 노력이 활발하다. 일본은 2005년 ‘발달장애 아동 지원 법령’을 발표했다. 오사카시를 중심으로 발달장애가 있지만 일반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를 위해 현마다 자폐 아동 코디네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오사카대 소아과 나가이 교수는 “신생아를 중심으로 6개월·12개월·18개월 때 발달장애를 무료로 진단해 조기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리노이대 소아정신과 레벤살 교수는 “2004년부터 주 전체의 대학, 의료 전문가, 치료 전문가들이 협력해 자폐아 선별·진단을 하고 있다”며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신체는 물론 정신을 조기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때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경제위기는 아이들의 ‘마음의 병’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달 서울의 저소득층 밀집지역 초·중교 7곳에서 81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저소득층 아동의 53%는 경제위기로 ‘걱정이 많아졌다’고 답했다. 27.4%는 ‘자신감이 없어졌다’고 했으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한 비율도 25.9%나 됐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모상현 연구위원은 “소득이 낮은 빈곤층의 아동일수록 심리적·정서적 고통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부정적 감정이 정서적 질환으로 연결되지 않으려면 정부의 치료 지원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원진·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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