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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제2의 윤이상’ 평가 받는 재독 작곡가 박영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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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두 사람은 편지로 만남을 시작했다. 지난달 26일, 1주일 일정으로 한국에 온 재독 작곡가 박영희(64)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 편지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여성 작곡가의 삶과 작품을 연구하는 음악학자 채현경(56·이화여대 작곡과) 교수가 2006년 보낸 것이다. 박씨가 독일 최초의 음악대학 여성 교수, 현존 작곡가들의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현대음악제(도나우에싱겐)가 초청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 등 명성을 얻은 후 고국에서 짧은 강연회를 열었던 해였다.

음악학자 채현경씨(左)는 작곡가 박영희씨(右)의 이름을 미국 유학 시절 들었다. “현대 작곡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동료의 ‘제보’였다.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박씨에 대한 궁금증이 이때 시작됐다고 한다. [조문규 기자]


채현경씨는 2006년 이후 박영희씨의 음악 세계를 좇았고, 그 결과를 이달 중순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아시아연구 학회에서 발표한다. 박씨는 세계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KBS 해외 동포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에 들렀다.

#독일에서 찾은 한국의 뿌리

채현경(이하 채):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명성을 얻으셨지만 시작은 쉽지 않으셨겠죠.

박영희(이하 박): 종이 피아노로 시작했어요. 충북 청주가 고향인데 그 시절 악기라고 봤던 것은 학교에 있는 피아노 뿐이었죠. 시간만 나면 달려가서 피아노를 만졌죠. 그래도 갈증이 안 풀려서 빳빳한 종이에 건반을 똑같이 그려서 착착 접어 가지고 다녔어요. 소리는 머릿속에 있었고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죠.

채: 29세에 독일로 떠나신 후 6년 만에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 대열에 들어가셨죠. 슈투트가르트 시에서 주최한 콩쿠르 우승도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여요.

박: 힘들게 유학을 떠났죠. 장학금을 받기도 참 어려웠고요. 독일로 작품을 보내 교수들에게 검증을 받아 다시 주한 독일 문화원에 보내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렇게 떠난 후 한국을 강조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일부러 한복을 입고 다닐 정도였어요.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요. 『논어』『손자병법』, 송강(松江) 정철의 작품 등 정신의 뿌리를 찾아 헤맸죠. 제 작품 대부분이 ‘만남’ ‘소원’ ‘님’ 등 한글로 돼 있는 것도 그 이유죠.  

유학 10년 후쯤, 한 유명한 콩쿠르에서 우승한 작곡가들의 명단을 본 적이 있어요. 수십년동안의 우승자들 이름에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죠. 위기의식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한국의 문화에 파묻히지 않고, 다른 문화를 익혀야한다는 생각에 시달렸죠. 일단 동양의 정서에서 가장 먼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오이디푸스를 찾아냈어요. 2006년 슈투트가르트 세계현대음악제에 초청된 ‘달그림자’에 이 이야기를 쓴 출발점이에요. 그리스 신화는 반복해서 내 음악에 사용됐습니다. 지금은 독일·이탈리아·프랑스의 말을 할 줄 알고, 여기에 한문도 읽을 줄 알게 됐죠. ‘동양인’과 ‘여성’이라는 건 두가지의 장애를 가진 것과 같았지만, 끝없는 노력과 연구로 극복할 수 있었죠. 어느 한 문화에 묻히지 않으면서 뿌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힘이에요.

#여성의 음악, 어머니의 화음

채: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품에서 한국의 어머니가 느껴져요.

박: 신사임당이 5만원권 새 화폐의 주인공으로 채택됐다면서요. 독일에서 소식을 듣고 한국의 어머니들 생각이 나서 목이 메었어요. 저는 한국어로 ‘어머니 음향’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독일어 ‘무터 아코르트(Mutter Akkord)’를 만들어 썼죠. 참고 견디고, 모든 것의 시작인 모습을 음계로 표현한 소리에요.

채: 한국만 봐도 음악 하는 사람의 90% 이상이 여성인데, 음악사는 남성 위주로 서술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죠.

박: 독일도 여성에게 우호적인 나라는 절대 아니에요. 처음에 교수로 임용될 때도 어려움이 많았죠. 반대도 많았고요. 지금도 독일 전체에 작곡과 여교수가 세명뿐이라고 해요. 제가 임용될 때는 “벽이 깨진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채: 그래서 여성 음악가들이 서로 손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박: ‘어머니 음향’이 한 작품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소리를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 여성 작곡가의 힘이죠. 저는 한번도 여성이라는 점을 잊은 채 작곡한 적이 없습니다. 여성 음악가들이 할 일이 많아요.

정리=김호정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박영희=서울대 음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졸업. 세계 작곡가 세미나(1978), 파리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1979) 등에서 우승했고 하이델베르크 시 선정 여성작곡가상을 받았다. 한국철학과 동양사상, 그리스 신화를 접목한 작품으로 현대 작곡계의 중요한 인물로 부상했다. 현재 브레멘 국립 예술대학에 재직 중이며 각종 현대음악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유럽에서는 ‘영희 박-파안(Younghi Pagh-Pa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제2의 윤이상 위치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채현경=하버드 대학 음악학 석사, 미시간 대학 음악학 박사. 역저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2002)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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