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대선행보에 표류하는 지방자치 … 전면적인 재검토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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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의 핵심자리인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대선에 출마했거나 출마 움직임을 보이면서 35년만에 다시 출범한 지방자치제도가 흔들림에 따라 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지난 95년7월 단체장으로 당선됐을 당시에는 시민과 도민들을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최근 임기를 1년이나 남겨놓은 상태에서 공약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채 도중하차할 형편이어서 시민들만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후보들도 단체장자리를 대권도전의 디딤돌로 간주해 행정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적인 입지만 높이기 위해 외도 (?) 할 가능성이 높아 절름발이 행정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1천8백여만명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의 외도로 빚어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들이 내세웠던 각종 사업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순 (趙淳) 서울시장이 출범후 가장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시내버스 개혁등 교통문제다.

그러나 공영버스 운행등의 정책이 시의회의 반대에 부딪쳐 중도하차할 위기에 처하자 부도등으로 시내버스운행이 중단된 지역의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趙시장 임기중 공약사항에 대한 서울시의 자체 평가에서도 총 6백85개사업중 17%인 1백17개만 완료했을뿐 나머지는 추진이 흐지부지됐거나 취소.보류된 상태로 나타나 중도하차의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경기도의 경우도 통일전진기지개발.신도시문제점 해소등 1백38가지중 50여가지의 공약사업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어 장밋빛 공약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외도로 인해 공무원들이 복지부동의 자세를 보이는 것도 행정공백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문제점이다.

趙시장이 지난달 20일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공식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하자 상당수 서울시 공무원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일손을 놓고 있다.

이때문에 새로운 사업추진이나 시민의 아픈 곳을 긁어주는 아이디어 행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잘 보일 윗사람도 없는데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느냐. 기존에 추진했던 지속사업만 일상적으로 시행하고 있을 뿐" 이라는 한 서울시공무원의 말은 현재의 서울시 주소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경기도도 이인제 (李仁濟) 지사가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지난 3월께부터 공무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업무에 대한 열성도 떨어지고 아예 책임지는 일은 하려하지 않는 실정이다.

중도하차하는 단체장과 의회와의 마찰도 이들 행정공백의 골을 깊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趙시장이 민주당후보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국민회의 소속 시의원들이 전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의원들은 趙시장이 역점적 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해 제출했던 추경예산안중 교통.복지.환경분야등 15건에 8백61억원을 대폭 삭감, 사업집행을 못하도록 거부권을 행사했다.

경기도도 국민회의등 야당소속 의원들이 신한국당 후보로 나선 李지사의 도정소홀을 강력하게 비난해 마찰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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