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유래]은평구 신사동 (新寺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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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은평구신사동 (新寺洞) 의 동명은 정확한 고증이 되지 않지만 옛날 이곳 어디엔가 절을 새로 지으면서 붙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조선초 한성부북부성외방 (城外坊)에 속했으며 고종 2년 (1865)에 발간된 '육전조례 (六典條例)' 에는 한성부북부신사동계 (新寺洞契) 로, 이어 갑오개혁때에는 한성부북서 (北署) 연은방 (延恩坊 : 성외) 신사동계의 신사동으로 오늘날같은 행정단위명이 되었다.

지금은 주택가로 변했지만 신사동 300번지 (현재의 숭실고 부근) 일대의 옛 고을 이름은 '고태골' . 사람이 죽을 경우 흔히 '북망산으로 간다' 는 말을 쓰지만 이에 못지않게 '고태골로 간다' 고도 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 고태골이다.

북망산 (北邙山) 이 중국 장안근교에 있는 공동묘지이니 '북망산으로 간다' 는 말이 중국식이라면 '고태골로 간다' 는 죽음에 대한 순전히 우리식 표현인 셈이다.

이곳이 고태골이란 이름을 얻게된 것은 고려말 '고태 (高太)' 란 장군이 살았다는 전설때문. 무예가 워낙 출중해 각종 전투에서 공을 크게 세운 高장군을 위해 만년에 편히 살 수 있도록 나라에서 이곳에 으리으리한 집과 함께 너른 땅을 주었다.

허나 이같은 부귀영화에도 불구하고 高장군에게는 후사가 없어 늘 쓸쓸했는데 이때문인지 어려운 인근 백성들을 위해 재물을 아끼지않았다.

결국 高장군은 임종지킴이도 없는 가운데 이승을 마쳤고 이를 불쌍히 여긴 동네 사람들이 이곳에 장사를 지내주었다.

하지만 가는 것은 시간이요 흐르는 것이 세월이라 얼마 지나지않아 그 호화롭던 高장군의 집터는 인적이 끊긴채 잡초만 무성하게 돼 일대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부귀영화보다는 다자 (多子) 를 더 쳤던 당시 사람들은 이후 이곳으로 땔나무라도 갈라치면 "죽으러 가느냐" 고 빈정댔고 이것이 나중에는 죽는 것 자체를 아예 '고태골로 간다' 고 일렀다는 것이다.

견강부회해 지어낸 얘기같기도 하지만 어쨋든 서울에서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가는 곳이나 무덤이 많은 곳은 여지없이 '고태골' 로 불렸으니 이곳말고도 광희문바깥인 지금의 신당동 중앙시장자리와 미아리고개 너머 길음골짜기, 아현동 굴레방다리 안쪽 능안등이 그 곳이다.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를 잃은 영국에서는 이럴때 뭐라고 할까.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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