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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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윤하영,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가?

물었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그런것에 실리는 정신적 무게를 의식한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미묘한 정서의 장벽이었다.

하영에 대해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질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라고 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알 수 없는 장애감은 나로서도 어쩔수 없었다.

에메랄드 궁전으로 사라진 여자. 문제는 사랑의 원형처럼 내 가슴에 남겨진 그녀가 아니라 그녀에게 행해진 내 두레박질의 원초적 경험이었다.

그 때, 열여덟의 나이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안간힘을 다 해 내 마음의 우물물을 퍼올렸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상에서 경험하는 최초이자 최후의 두레박질이 되기를 밤낮으로 갈망했었다.

물론 세상에는 눈뜨지 못한 채 내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충실한 결과였으리라. 되풀이 되는 두레박질의 경험 같은 것. 지상에 만연한 사랑이 단지 그런 것일 뿐이라고, 첫사랑 이후의 경험에 대해 나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왔다.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이 되풀이 되는 동안, 형식이 달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걸 경험한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이 진실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한번뿐이라는 생각을 굳힌 것이었다.

원초적 경험으로서의 첫번째 두레박질 이후에 되풀이 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숙련된 기술이거나 요령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 하영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섣불리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의 불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온당한 것이라 해도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어차피 불구로 취급될 수 밖에 없다, 하는 게 세상에서 통용되는 논고가 아닌가.

세상의 논고를 두려워하고, 그것에 적응하고 싶었다면 나는 얼마든지 하영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고 또한 그녀와 결혼도 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을 마음의 불구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끔찍스러운 일, 그것은 자신을 기만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었다.

그런 자에게 혼자 사는 일 말고 달리 무슨 구원의 방도가 있으랴. 서기 2000년5월, 세상은 여전히 비에 젖고 있었다.

탁한 암회색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풍경에 내 마음이 이입되고, 그것의 심층에서 농밀한 허무의 안개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현실의 윤곽선이 허물어지면서 눈앞이 침침해졌다.

젖을 대로 젖은 풍경의 이면에서 떠오르는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 - 너, 스스로 길을 열지 못하면 더 이상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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