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씨티그룹 국유화, 미 은행 구조조정 계기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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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인 미국 씨티그룹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경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국유화의 길을 택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력으로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보유 중인 씨티그룹 우선주 250억 달러어치를 보통주로 전환함으로써 씨티그룹의 지분을 최대 40%까지 늘리기로 했다. 정부가 단일 최대 주주가 됨으로써 씨티그룹이 도산할 가능성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씨티그룹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앞으로 갈 길이 멀고 험하다.

미국 정부로서는 씨티그룹의 국유화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국 재무부는 그동안 국유화 카드를 극도로 꺼렸다. 그동안 몇몇 금융회사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는 했으나 경영권까지 가져오는 본격적인 국유화는 피했다. 그러나 금융권의 상황이 다른 대안을 찾기에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갔다. 금융권의 구조조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의 간판 은행이 무너질 위기에 빠지자 급한 대로 국유화를 통해 은행을 살려놓기로 한 것이다. 주요 은행의 경영 악화를 방치했다간 자칫 뱅크 런(대량 예금 인출 사태)이 벌어지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씨티그룹의 국유화가 미국의 금융권 수술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씨티그룹 이외에도 국유화설이 나도는 부실 금융회사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미국 정부가 나서서 손봐야 할 금융회사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다. 이들 금융회사의 부실 자산을 정리하는 데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미국 금융권을 어떤 방식으로 개편할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 정부는 씨티그룹 국유화를 계기로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든 이상 신속하고 과감한 수술에 나서야 한다. 서둘러 금융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 옥석을 가리고 곧장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간 미국 금융시스템의 붕괴는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을 수습 불능의 혼돈으로 몰아갈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