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63.연극평론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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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신극 (新劇) 의 역사가 1백년도 채 안되는 우리나라에서 연극과 관련된 각 분야별 연구는 그 역사만큼이나 일천하기 그지 없다.

지금까지 연구성과의 대부분은 개괄적인 연극사나 특정 작가의 희곡연구, 혹은 연극원론의 수준에 집중돼왔다.

일차적인 이유는 인력의 태부족 혹은 빈약한 관심도 때문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국내 연극평론가의 90%이상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거나, '언젠가' 란 단서를 달고 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연극 저작들이 이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자신들의 연극적인 '소통창구' 로서의 평론에 대한 사적 (史的) 정리나 활발한 메타비평등의 수준까지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우리의 연극평론은 그때그때 공연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 에 치중할 뿐 '평론' 그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이나 평론의 규범.국내외 평론의 역사.다양한 접근법등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는 빈약하다.

또한 '불편부당' '공평무사' 를 신조로 삼아야 할 평론의 독립성 부분에서도 아직 신뢰도가 떨어진다.

현재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구히서)에 가입돼 있는 현역 연극평론가는 40여명에 이른다.

문학.영화에 버금갈 정도로 숫적인 면에서 타분야에 뒤질게 없다.

협회회원의 대부분이 '즉시 전력' 을 갖춘 사람들이어서 평론가입네 이름만 달아 놓고 행세하려는 부류와는 다르다.

연극 특유의 다이내미즘이 평론에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성향별로 대별하면,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학교수 (혹은 강사) 들이 대부분이다.

연극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출신 (연출가.배우.스태프) 평론가는 전무한 실정이다.

국문학이나 외국문학중에서 희곡문학을 연구하면서 평론을 겸한 때문이다. '평론1세대' 이자 원로 평론가인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 씨를 비롯, 유민영.이태주 (이상 단국대).한상철 (한림대).김윤철, 최준호 (이상 연극원) 씨등을 봐도 영문학이나 국문학에서 희곡을 연구한 사람들이다.

한창 제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30.40대 젊은 평론가들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학을 전공한 김문환 (서울대) 씨의 경우가 특이하게 비칠 정도로 문학 (희곡) 전공자들이 압도적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30년 가깝게 연극담당기자로 일했던 한국연극평론가협회 구히서 회장은 유일한 기자출신 평론가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아카데믹한 이론가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연극평' 의 주류는 저널리즘비평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즉, 신문을 통해 주로 연극평이 실렸고 이것이 연극평의 전부인양 착각될 정도로 저널리즘과 연극평의 '밀월관계' 는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이런 전통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돼 왔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해방전후로 저널리즘비평의 주인공에는 차이가 있다.

구히서씨는 "일제시대엔 지사적 언론인들이 보도와 평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면, 50년대 여석기씨등의 전문평이 나오면서 저널리즘비평도 전문평론가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고 분석했다.

이같은 저널리즘 연극평의 흐름은 간혹 연극평의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최근들어 언론사 주최의 공연이 많아지거나, 막대한 돈이 드는 대작공연 (특히 뮤지컬) 이 늘면서 제작자의 의도에 '순치된' 글을 쓰는 평론가들이 없지 않았던 것. 한 중견연출가는 "평론의 모범을 보여줘야 할 일부 이름난 평론가중에서도 '곡평아세 (曲評阿世)' 할 때가 가끔 발견된다" 며 "제대로 된 연극평이야말로 연극을 발전시키는 원동력" 이라고 역설했다.

때문에 평론가 스스로 독자적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 앞으로 남겨진 숙제다.

연극평의 방법론 측면에서도 보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희곡전공 평론가들의 득세때문에 종종 문제가 되는 것으로, 특히 해외에서 공부한 평론가들의 경우 너무나 서구 지향적인 평론의 잣대로 국내연극을 재단한다는 '비난' 이다.

최근 산울림 소극장에서 '산씻김' 을 공연한 연출자 채윤일씨는 "작가 (이현화) 나 나나 작품을 만들면서 아르토의 '잔혹극' 을 염두에 둔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며 "형식의 특이성 때문에 우선은 서양식 형식에다 꿰맞추려는 평단의 서구지향성은 경계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라마의 구성 (플롯) 분석에서도 현장과 평단이 종종 부딪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 구히서씨는 "서양의 '기승전결' 구조와 갈등구조를 맹신하는 서양식의 직선적 접근법으로는 '원형 (圓形)' 에 가까운 한국적 드라마의 구조분석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고 말했다.

현재 연극평론계는 세대교체의 격변기에 놓여 있다.

최근 1~2년사이 30.40대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담으려는 노력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신문에 정기적으로 평을 쓰고 있는 이혜경 (중앙일보).오세곤 (한국일보).안치운 (한겨례) 씨등은 저널리즘비평을 통해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각각 해외파와 국내파인 이씨와 오씨는 '과격한' 분석보다는 현장이해의 바탕에서 글을 쓰려는 겸손한 자세가 장점이다.

반면 안씨는 '연극밖' 에서 '안' 을 관조하려는 제3자의 입장을 철저히 견지하고 있다.

이들외에 심정순 (숭실대).김방옥 (청주대).김미도 (서울산업대) 씨등이 막강한 여성평론가 그룹의 전면에 서있다.

특히 심씨는 페미니즘 연극비평의 내로라하는 이론가이자 독설가이다.

이들 젊은 평론가그룹은 전세대보다 훨씬 평론의 독자성 확보에 적극적인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소규모 모임이나 서적발간, 전문평의 기고등에 열심이다.

협회장 중심으로 '오늘의 연극비평' 지를 정기적으로 발간한다거나 '한국연극' '공연과 리뷰' 를 통한 활발한 비평활동,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등 소규모 모임을 통한 '세력화 작업' 등이 이 젊은 평론가들 주축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평론의 방법론면에서 아직도 현장과의 균형점을 찾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어떤 글을 쓰든 평론가측에서는 평론을 '작품의 기저에 깔린 의미의 확장' 이라 주장하지만 현장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설득력을 갖췄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어디까지나 평론도 현장과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생산의욕을 붇돋워주는 차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장측의 요구다.

애써 현장을 외면하면서 '고고한 목소리' 에 집착하려는 일부 평론가들은 현장의 이런 투정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할 것같다.

그래야 평론도 바로 서고 권위도 생기는 것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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