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우편 인프라]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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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각종 고지서.초청장등 우편물을 제대로 배달받지 못해 낭패를 겪은 사람들의 불만이 높다.

우편배달이 늦어 결혼식.동창회에 못나간 사람, 무선호출 요금고지서를 못받아 본의아닌 연체자가 됐다는 사람등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지서를 보낸 회사들도 애먹는다.

그런 와중에 국내 우정사업은 연간 1천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며 국민에게 큰 짐을 지우고 있다.

우편배달의 최전선 (最前線) 인 우체국과 집배원도 할 말이 많다.

우리사회의 저효율 구조 깊숙이 자리잡은 열악한 우편배달 인프라의 실상과 해결방안을 점검해 본다.

서울 여의도 LG빌딩내 우편물 총괄관리실인 LG메일센터. LG그룹의 경우 이곳에서 우체국으로 부터 우편물을 넘겨받아 계열사별로 재분류, 전달한다.

메일센터 한경석 과장은 "우편물은 회사에 도착된후 분실되거나 수취인에게 전달이 안되고 방치되는 일이 잦은데 LG그룹은 메일센터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어 그런 부작용이 없다" 고 말한다.

그러나 LG빌딩에도 인근 타사가 수취인으로 된 우편물이 하루 30통, 많으면 50통씩 번지수를 잘못 찾아 들어온다.

우체국에서 분류가 잘못된 것들이다.

거꾸로 LG우편물이 타사로 잘못 배달됐다가 보통 3~4일 늦게 찾아오는 경우는 하루 10통 가까이 된다.

고객에게 보낸 우편고지서가 자주 분실된다고 말하는 나래이동통신 직원들은 우편물의 배달지연.분실에는 일반적으로 이용자의 잘못도 많지만 우체국.집배원측의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아파트 동.호수가 엄연히 적혀 있는데도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오고▶같은 주소로 보통우편을 이용하면 배달이 안되는 것도 우편요금이 비싼 등기로 보내면 전달되며▶ '지난달에는 고지서가 왔는데 이달에는 안왔다' 는 가입자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우체국의 잘못은 여론조사기관의 실험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코리아리서치센터는 지난 95년말 전국 33개 지점에 모니터요원을 두고 2만여통의 우편물을 실제로 주고받으며 '우편물의 지연배달.분실에 대한 원인' 을 분석했다.

이 조사에서 코리아리서치는 "이용자가 주소를 잘못 기입한 원인보다 우체국.집배원의 수거.운송.분류 과정에서의 실수가 더 많다" 고 밝히고 있다.

배달지연 사례는 전국적으로 흔히 나타난다.

춘천시민이지만 소양댐으로 길이 막혀 배로만 통행이 가능한 북산면대동리 주민 장현문 (張玹文.61) 씨는 신문을 며칠씩 지나서야 배달받고 있어 신문 아닌, 구문 (舊聞) 을 읽는다.

남제주군 마라도 등지에는 편지를 보낸지 1주일이 지나서야 도착한다.

편지뿐 아니라 소포물에 대한 우체국 서비스가 불편하다는 소리도 높다.

컴퓨터 조립업자 김영진 (金榮進.40.경기도 평촌신도시) 씨는 소포는 요금을 좀 올리더라도 편리한 배달수단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컴퓨터 서적이나 소프트웨어를 소포로 부치려면 물건포장.우표구입.송달등 과정이 몹시 번거롭다" 고 말한다.

그는 수백평 규모로 내부공간이 넓은 평촌우체국의 경우 고객이 눈에 띄지 않을만큼 한가롭다며 우체국측이 적극적인 고객유치 서비스를 내놓지 않고 안일하게 일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부는 우편서비스에 대한 이같은 불만의 상당부분은 일반인의 오해가 덧붙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관계자는 "국내 우편물의 배달률이 선진국과 대동소이한 95% 수준이지만 일반인이 느끼는 체감배달률은 70%대로 나타나고 있다" 며 "이는 우편물을 한번만 못받아도 당사자의 뇌리에 깊이 박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국내 우체국은 직원수.자동화설비등 전반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열악하다.

우선 쏟아지는 우편물의 양에 비해 집배원등 우편물 처리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은 우체국당 5천명의 인구를 관할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한 우체국이 1만3천명을 맡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집배원이 더 많은 인구를 관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배원 1인당 배달물량은 선진국보다 뒤진다.

우리는 우편물을 자동분류하는 등의 자동화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는 자동화집중국은 한국엔 두곳밖에 없으나 미국과 일본은 각각 2백25곳, 83곳에 달한다.

그 영향으로 국내 우체국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국내 우체국직원 1명이 처리하는 한해 우편물량은 8만6천통으로 미국의 20만여통에 비해 크게 뒤진다.

이같은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우리나라의 우편수입은 국내총생산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선진국의 3분의1 이하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는 국내 우편요금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탓도 있으나 반대로 국내 우체국도 수입증대를 기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이중구.이찬호.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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