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넘어 인류 共存同生 주창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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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22면

독립선언문은 우리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상징하는 핵심적 문서다. 독립선언문은 유려하고 장중한 문체로 우리 민족 독립의 역사적·원리적 당위성을 당당하게 천명했다. 우리는 독립선언문을 시대 상황에 따라 재해석하고 새롭게 음미해야 한다.

동양적 문명주의 독립선언문 다시 읽기

3·1운동 당시 온 국민에게 배포된 독립선언서와 전단류는 많은 종류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도쿄 2·8독립선언서와 용정 3·13운동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포고문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3·1운동을 전국적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보성사판 독립선언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선언문을 영어·프랑스어·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로 번역해 우리의 독립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한자투성이라 좀 어렵다. 인터넷 검색으로 원문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한글독립선언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919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걸쳐 손병희·최린·권동진·오세창 등 주요 지도자들은 3·1운동을 앞두고 선언서의 취지를 협의했다. 결정된 주요 방침은 감정에 흐르지 말고 온건한 표현을 쓸 것, 동양 평화를 위해 조선 독립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조할 것 등이었다. 최남선이 선언문을 완성했고 한용운이 공약 3장을 추가했다.

선언문은 단순히 우리 민족의 독립 요구만을 내세운 게 아니었다.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세계를 향한 3·1운동 지도자들의 웅대한 포부가 드러난다. “신예(新銳)와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보비(寄與補裨)할 기연(機緣)을 유실함이 무릇 몇 번이던가” “오늘 우리들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있을 뿐이오, 결코 다른 이를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 독립은…동양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

독립선언문의 내용과 형식은 독특한 사유적 특징을 담고 있다. 특히 제4절에서 한국 독립 문제의 성격과 의미를 밝혔는데, 한·일 간 문제의 근원이 일제의 침략주의·강권주의에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침략국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나 원색적 비난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독립 쟁취를 위한 적극적 투쟁 의지가 약하다는 비판이 있다.

나아가 일본 군국주의의 본질을 간과한 패배주의적 인식을 담고 있다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또 독립 방략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며 정신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소위 ‘무단통치’ 정책에 의해 10여 년간 암울한 식민지 통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폭력 투쟁을 내세우지 않고 비폭력·평화·정의·인도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독립선언문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우리의 독립을 연계해 대외적 호소력을 높였다. 대내적으로는 ‘비폭력 저항’이란 고차원적인 이상을 표방함으로써 일반 대중이 대중 시위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동기를 줄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독립선언문의 내용은 최근 국내외 여러 학자에 의해 심층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류의 공존동생(共存同生)’이란 표현은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 선언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의 야만성과 일본 지성계에서 논의된 인류 공존의 가치를 조선의 지식인들이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데서 비롯됐다고 평가된다. 또한 서구 문명을 대리하는 일본과 대조적으로 독립선언문은 인종이나 언어, 풍속을 초월한 보편적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 ‘동양적 문명주의’를 표방한 것이라는 새로운 해석도 나왔다.

이처럼 독립선언문은 인류 공통의 이상과 세계 평화, 정의와 인도, 자유와 평등을 표방한 항구적 보편적 가치를 갖는 명문장으로 길이 기억되며 재평가될 것이다. 90년 전은 물론, 영원한 ‘경전’적 가치가 빛나는 ‘국보급’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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