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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출신 화가 신석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더욱이 퇴직후에, 그것도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네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끝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노 (老) 화가는 그래서 바쁘기만 하다.

대구시달서구송현동 작업실에서 올해로 7년째 붓을 잡고 있는 신석연 (申碩鍊.71) 씨. 그의 전직은 그림과는 거리가 먼 육군소장을 지낸 군인이다.

6.25가 나던 해 육군종합학교를 나와 병기장교로 군복을 입은뒤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73년 육군병기학교장을 거쳐 82년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에서 전역할 때까지 32년간을 병기분야에만 몸담은 '병기분야의 산 증인' 이다.

화실에서 만난 첫 인상은 짙은 눈썹에 건장한 체구가 아직도 영락없는 무인 (武人) 이었지만 빙긋이 짓는 그의 미소와 여유는 도 (道) 를 통한 예술인으로 느껴졌다.

그가 이 화실에 둥지를 튼 것은 82년 군문 (軍門) 을 나와 2년쯤 서울에서 사장이랍시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며 허송을 한 뒤였다.

"장군 출신들 서울생활 그렇고 그렇지 않습니까. 이따금 동료들이 필드 한번 나가자고 하면 그간 세상 이야기도 들을 겸 골프장에서 하루를 보내지요. 그런 생활이 계속되니 싫어집디다.

무작정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지요. "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양할 겸 처음에는 서예를 시작했다.

석달간 서예원을 나갔으나 잡념이 많아선지 도무지 되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인물이 초등학교 선배이자 국내 인상파의 선구자였던 이인성 (李仁星) 화백.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李화백이 "너는 그림 그리면 되겠다" 면서 손을 잡아주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이후로 그는 언젠가 한번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마음 속에 희망으로 간직해왔다.

"그 길로 달려가 처음으로 붓을 사서 혼자 그림을 그렸어요. 데생도 음양도 몰랐으니 될 턱이 없었습니다.

5년간 누드 모임인 나상회에 나가 음양과 색채를 배우면서 조금씩 느낌이 오더군요. " 우선 집 가까운 곳에 혼자 묻혀 지낼 수 있는 작업실을 마련했다.

집에서는 찾아오는 사람들로 도무지 그림 그리기에 전념할 수 없었기 때문. 지금도 화실 전화번호는 비밀이다.

뒤늦게 쏟은 열정으로 그동안 세차례 개인전과 여러 차례의 그룹전에 참여, 1백여점의 그림을 선보였다.

소재는 자연.인물.정물등 크게 제한을 두지 않는다.

현재 수십여점을 작업중이며 화실 한켠에 마련된 완성작만 수백여점에 이를 정도. 그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게 매력이라고 말한다.

또 그림 중에서도 유화는 덧칠을 해나가면서 수정할 수 있어 흡족한 벗을 찾았다고 만족해 한다.

그는 6년째 비슷한 연배의 제자를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있다.

"그저 좋아서 그린다" 는 그는 문득 좋은 소재가 떠오르면 전국 어느 곳이든 스케치 여행을 떠난다.

골프채는 8년째 창고에 넣어놓았다.

매일 오전9시 작업실에 나와 오후5시 집에 돌아가는 그는 한 점이라도 흡족한 그림을 그려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게 마지막 바람이라 했다.

대구 =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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