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 방화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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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관이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고 검찰청 검사실에 불을 질렀다는 이른바 ‘전주지검 방화사건’을 둘러싸고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방화 시점이 불분명한 점 ▶베테랑 수사경찰이 방화 현장에 각종 증거물을 남긴 점 등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앞서 검찰은 24일 “15일 오후 10시쯤 전주지검 신관 2층의 창살을 뜯고 하모 검사실에 들어가 불을 지른 혐의(공용건물 방화)로 전주 덕진경찰서 소속 김모(43) 경사를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본지 2월 25일자 10면, 26일자 10면>

하 검사와 김 경사는 지난해 9월 사기사건에서 만났다. 검찰에 따르면 전북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근무하던 김 경사는 박모씨로부터 “꾐에 빠져 성인PC방에 4400만원을 투자해 날렸다. 돈을 찾을 길이 없겠느냐”는 청탁을 받았다. 이에 “돈을 찾으려면 협박·갈취를 당했다”고 진술조서를 꾸미도록 해 수사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막을 알게 된 하 검사는 사기사건을 갈취사건으로 조작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등)로 김 경사를 구속했다. 직위해제된 김 경사는 지난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나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방화범 맞나=검찰에 따르면 김 경사는 15일 오후 10시쯤 하 검사실에 침입해 방화했다. 불은 소파 등을 태웠으나 이중 창문 때문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안 돼 저절로 꺼졌다고 한다. 검찰이 추정한 방화 시점은 현장에 있던 벽시계의 바늘이 10시50분쯤에 멈춰선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시곗바늘이 불과 연기로 방화 50분 만에 정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경사가 운영하던 김밥집 여종업원은 본지 기자와 만나 “15일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김 경사와 음식점에 함께 있었다”며 “김 경사가 배달을 나간 적은 있지만 10분 이상 자리를 비운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방화 시점에 김 경사는 김밥집에 있었다는 얘기다. 김밥집은 불이 난 검찰청사에서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곳에 있다. 김 경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부인과 함께 김밥집을 운영해 왔다. 그는 현재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술하게 증거 남겼나=검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에서 채취한 유전자(DNA)와 녹화가 지워진 15일 당일 김밥집 폐쇄회로TV(CCTV) 화면을 결정적 증거물로 보고 있다.

김 경사는 16년간의 경찰관 생활 대부분을 기동수사대·광역수사대 등 수사 일선 부서에서 근무했다. 방화에 가장 중요한 단서인 라이터를 현장에 남기고, CCTV 녹화 테이프를 범행 당일만 지운 점은 김 경사 같은 수사전문가의 소행으로 보기에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경사는 “라이터는 방화 사건 발생 전 검사실에 조사받으러 갔을 때 담배를 피운 뒤 놓고 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화 사건 전 하 검사실에서 발견된 농약이 든 생수통도 의문을 키우고 있다. 생수통에 농약을 투입하기 위해 누군가 하 검사실에 침입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하 검사에게 해를 끼쳤을 때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오를 사람은 김 경사”라며 “이를 아는 김 경사가 농약을 투입하고 방화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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