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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룡의 일본속으로]4.스토리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성 공한 엔터테인먼트 작품의 공통점 셋 - '탄탄한 스토리' '주인공에의 감정이입' '뛰어난 영상 (그래픽) 처리' 다.

만화.애니메이션은 물론 전자오락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갤러그.제비우스.테트리스가 전자오락을 리드하던 시대, 플레이어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버튼을 조작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사용자가 주인공 자격으로 전투를 행하고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RPG (role playing game) 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시뮬레이션 게임이 등장하면서 전자오락에서 스토리가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에반겔리온처럼 만화를 토대로 한 게임이 등장하고 드래곤 퀘스트처럼 게임에서 만화로 이어가는가 하면 도키메키 메모리얼같이 게임에서 출발해 영화로 재생산되는 것은 게임의 중심이 스토리로 옮겨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이와는 무관했던 전통적인 게임에도 스토리가 도입되고 있다.

특수공작부대의 멤버가 우연히 낡은 서양식 주택에 들어가는 것을 계기로 좀비형 괴물과 공포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바이오 하자드' .두 남녀로부터 플레이어가 조작할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 스토리 자체도 크게 변한다.

결국 총을 쏘는 슈팅게임이지만 스토리 삽입으로 근래 보기 드물게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2' (1991년)가 격투게임의 붐을 일으키고 '버츄어 파이터' (1994년)가 3차원 폴리곤 격투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 때까지만 해도 스토리가 필요없었다.

오로지 격투만이 유효했을 뿐. 그러나 '철권' '투신전 (鬪神傳)' 의 성공이 보여주듯이 포화상태의 격투게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부여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소니가 자체 제작한 RPG '아크 더 래드' 는 요란한 TV 광고는 물론 로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게임용 교향곡을 배경음악으로 깔아 화제가 됐다.

하지만 판매에는 실패. 이유는 스토리가 초등학생의 작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러고서도 프로그래머가 중심이 돼 만드는 게임으로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까.

김지룡〈경제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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