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 돌연사 원인은] 심장에 생기는 전기 토네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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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심장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점점 풀려가고 있다. 완벽한 인공심장(左)의 탄생도 멀지 않았다.

미국 중부지방에서 부는 회오리바람인 토네이도의 위력은 대단하다. 토네이도가 지나간 길목에는 집이고,동물이고 남아나는 것이 없다. 온통 전쟁이 훑고 지나간 것 처럼 폐허가 돼버린다. 돌연사의 주범이 심장에서 생기는 전기 토네이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상에 부는 토네이도는 공기의 흐름 때문에 일어나지만 심장의 그것은 전기가 심장 근육에 토네이도 형태로 형성된다.

고려대 물리학과 이경진 교수(신경망동력연구단장)는 심장 근육에 생기는 전기 토네이도의 존재를 규명해 국제 물리학계와 의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 결과는 물리학계의 최고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에 최근 발표되었다.

심장 근육은 1초에 한번꼴로 수축,혈액을 짜 동맥으로 내보낸다. 심장 근육이 수축될 때는 전기가 호수에 이는 파도처럼 심장 근육을 타고 퍼진다. 맨처음 파도를 만들기 위한 동심원의 핵은 하나로 이뤄져 있다. 즉, 정상인의 심장에는 1초마다 호수에 하나의 돌멩이를 던져 생기는 파도와 같은 형태의 전기가 생겨 심장 근육이 수축운동을 하게 한다.

그러나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전기 토네이도는 심장 수축운동을 정상적으로 하도록 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장의 또 다른 부위 여기저기서 막 생기는 것이다. 호수에 하나의 돌멩이가 던져져 파문이 퍼져나가고 있는 곳에 갑자기 여러 개의 돌멩이를 던지면 호수면의 파문이 엉망으로 뒤엉키는 꼴이다.

심장마비는 이럴 때 일어난다.

이 교수는 "심장 근육 여기저기서 생기는 전기 토네이도는 정상적인 심장 운동보다 훨씬 빠른, 1초에 10여차례씩 일어난다"며 "정상적인 심장 수축 활동이 비정상적인 전기 토네이도의 속도를 쫓아가다 결국 지쳐 파르르 떨며 심장이 멎어버리고 만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 심장 근육은 전기 토네이도의 회전 간격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심장 근육이 운동을 하지 않고 멎어버리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즉, 처음에는 그 속도를 따라가다가 아홉 번에 한번 또는 서너 번에 한번꼴로 수축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이 교수는 하나의 전기 토네이도가 생기면 그 토네이도는 여러 개로 갈라지면서 또 다른 토네이도를 연속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을 실제 심실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또한 하나의 토네이도 핵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심장 근육을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에서 이는 토네이도와 아주 흡사한 행태다. 각 전기 토네이도는 그 핵이 2㎜ 이상이 돼야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호수면에 아주 작은 돌멩이가 던져져서는 그 파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심장에서 전기 토네이도가 만들어지는 원인은 심장 근육에 이상이 생겨도 나타나지만 그 밖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전기 충격기는 바로 이런 전기 토네이도를 평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강한 전기를 심장에 순간적으로 흘려주면 심장 근육 여기 저기에 생긴 전기 토네이도는 사라지고 정상적인 심장박동을 일어나게 하는 전기 주기만 살아남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심장의 전기 토네이도로 인해 돌연사하는 사람은 연간 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앞으로 전기 토네이도의 징후를 포착해 없애는 기술이 개발되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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