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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62. 야외음악회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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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내에서 야외음악회의 전통이 시작된 것은 1907년 이왕직 (李王職) 양악대 (경성악대의 전신)가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매주 목요일 오전10시 시민을 위한 무료음악회를 개최하면서부터다.

따라서 야외음악회는 구한말 개화기에 서양음악 수용의 중요한 창구역할을 담당했다.

지금은 '음악회' 하면 당연히 햇빛과 비.소음을 막아주는 두터운 벽과 건물 내에서 열리는 실내공연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변변한 음악당이라고는 서울 종로의 YMCA강당 뿐이었던 시절, 야외음악회는 음악문화의 중요한 센터로서의 기능을 해냈다.

팔각정은 유럽의 도심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키오스크를 본따 만든 것.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만 있을 뿐 벽이 없고 바닥이 지면보다 높아 멀리서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탑골공원에서는 그후 10여년간 야외음악회가 계속됐다.

이때 연주된 음악은 주로 외국 행진곡. 경성악대는 용산에 있는 일본군악대와 이곳에서 가끔씩 합동공연을 갖기도 했다.

그후 남산 야외음악당과 장충단공원에서도 야외음악회가 자주 열렸으나 현재는 탑골공원과 마찬가지로 노인들의 휴식처가 돼 버렸다.

해방후부터는 덕수궁과 중앙청 (현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이 야외음악회 장소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46년 11월 전국취주악연맹 주최로 덕수궁 뜰에서 제1회 전국 중고교 취주악경연대회가 열렸다.

6.25 직후에는 그나마 몇개에 불과했던 음악회장이 공습으로 파괴돼 야외공연이 부쩍 늘어났다.

정부에서는 전쟁으로 일터와 가족을 잃은 국민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상흔 (傷痕) 을 달래기 위해 '시민 위안 음악회' 라는 타이틀로 야외음악회를 여러차례 열었다.

중앙청 광장은 당시 몇 안되는 높은 수준의 음악회 장소였다.

55년 8월3, 5일 공군군악대의 연주회에 이어 56년 7월 서울대 음대와 서울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시민위안의 밤 (지휘 이남수, 피아노 이성균) 이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56년 4월28일에는 미공군군악대의 내한공연이 이곳에서 열렸다.

이 공연을 위해 미군 공병대가 야외 원형공연장을 설계했고 대통령등 3부요인과 외국사절.유엔군 고위장성.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1백여명의 심포닉 밴드가 음악을 연주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탓에 주로 여름철에 열렸던 야외음악회는 요즘과는 달리 음악회 참석 기회가 매우 드물었던 50.60년대 가난한 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59년 7월22일 한.미 해군군악대 합동공연 (덕수궁) , 59년 9월8일 제1회 서울관악제 (동대문운동장) , 61년 7월14일 하바드대 합창단 내한공연 (덕수궁) , 61년 9월5일 홍콩주재 영국기병대군악대 내한공연 (중앙청 야외음악당) , 61년 9월21일 한.미 해군군악대 합동공연 (창경궁) , 65년 8월28일 서울시향 시민위안연주회 (덕수궁) , 66년 8월14일 서울시향 광복절 기념공연 (덕수궁) 등이 열렸다.

KBS교향악단.서울시향.국립국악원 연주단등이 펼친 80년대의 야외음악회는 '찾아가는 음악회' '움직이는 음악회' 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 덕수궁을 비롯해 대학 캠퍼스의 노천극장을 방문해 청중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지난해 5월 개관한 수원야외음악당은 본격적인 야외음악회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수원야외음악당의 건립은 음악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기존의 건물공간을 이용해 열리던 야외음악회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음악회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내 공연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축제적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야외공연장으로 건립된 이 공연장은 대지 2만5천8백평, 건평 5백4평에 객석 1천석만 비를 막을 수 있는 천막형 지붕을 갖추고 나머지 공간은 잔디밭으로 꾸며져 매년 여름 수원시민을 위한 음악제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시민의 문화향수권에 대한 관심이 증폭돼 앞으로도 많은 야외공연장이 곳곳에 들어설 계획이다.

지방의 경우, 야외공연장 건립은 기존의 실내공연장인 문예회관 건립에 이은 숙원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9월말 개관하는 분당 중앙공원내 야외음악당을 비롯, 여의도 광장공원내 축제마당, 천막형 지붕으로 1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립극장 야외극장, 충주 수안보 물탕공원.안양 중앙공원.울산 방어진공원.김포 문수산 레포츠공원 내 야외음악당이 새로 선보일 예정. 예술의전당 내 야외음악당은 설계안에 포함돼 있었으나 예산부족으로 착공하지 못한 상태. 여름철 궂은 날씨 때문에 국내에서는 야외음악회의 전통이 뿌리내리기가 힘들다는 일부 여론 때문에 예술의전당 내부에서도 야외음악당 건립을 놓고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당분간 상징광장.한국정원.만남의 광장등 기존의 야외공연장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 야외음악회 장소로 활용돼 온 곳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고궁.박물관 등 기존 건물이 제공하는 음향적 효과를 활용한 야외공연장으로는 가장 오랜 전통의 덕수궁 중화전 앞뜰을 비롯, 용산 전쟁기념관 옥외광장, 국립중앙박물관 광장 등이 있다.

기존의 공연장 주변의 공간을 활용한 야외공연장으로는 매년 봄.여름.가을 야외축제가 열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분수대광장,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조형무대, 국립극장 놀이마당, 93년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6시 '문화광장' 이 열리고 있는 국립극장 야외특설무대 등이 있다.

91년 개관한 대구 문예회관 야외음악당은 43평의 원형무대, 7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스탠드를 갖추고 있다.

세번째는 잔디밭과 숲으로 둘러싸인 시민공원이다.

한강시민공원, 잠실 올림픽공원, 미사리 조정경기장, 도봉산.관악산 등반로 입구, 올림픽 공원내 88잔디마당에서도 야외공연이 심심찮게 열리고 있다.

88잔디마당에서는 특히 지난해 10월21일 김자경오페라단이 레하르의 오페레타 '메리 위도' 를 상연해 최초의 야외 오페라 공연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이밖에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등 대학내 노천극장, 잠실 올림픽공원 수변무대, 제주 해변공연장, 서울놀이마당, 서울랜드 노천극장, 석촌호수 매직 아일랜드 호반무대 등 야외음악회의 입지조건을 갖춘 장소는 많다.

따라서 첨단시설을 갖춘 야외공연장 건립도 필요하겠지만 연주단체의 기동성 발휘에 따라 기존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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