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주‘국유화 홍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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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크리스 도드 미국 상원 은행위원장(민주당)은 20일(현지시간) “일부 은행을 한동안 국유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이날 은행주가 급락하는 등 뉴욕 주식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도드 위원장은 이날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국유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진행자가 “몇몇 은행은 국유화가 필요하다고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이 얘기했다”고 말하자 그는 “반길 일은 아니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국유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최근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일부 금융회사를 국유화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의원도 15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유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도드 위원장 발언의 영향으로 20일 뉴욕 증시에서는 국유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주가가 급락했다. 씨티그룹의 주가는 22% 하락한 1.95달러로 18년 만에 최저가를 기록했다. BOA 주가도 3.6%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인 3.7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 지수는 전날보다 100.28포인트(1.34%) 하락한 7365.67로 마감했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일어난 뒤 씨티그룹은 520억 달러(약 78조원), BOA는 450억 달러의 정부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대출 형태여서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지분을 보유하는 국유화와는 다르다.

증시가 출렁거리자 백악관과 정치권은 “국유화 계획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행정부는 민간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가 충분하고 적절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의원도 “누구에게 돈을 빌려 줄까 하는 결정은 정부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고 말해 은행 국유화에 찬성하지 않음을 나타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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