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머나먼 '세계 超一流'…10大기업,매출 경쟁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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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업경영과 관련해 백조론 (白鳥論) 이 있다.

백조가 호수위를 노니는 모습은 우아해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겉모양과 달리 수면밑에서는 한시도 쉬지않고 부지런히 발을 놀려야한다.

세계적으로도 잘 나가는 선진 초일류기업의 명망과 위세는 드높지만 그것은 외양일뿐이다.

그들 내부를 들여다보면 외부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피말리는 노력을 기울이고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너나없이 초일류기업의 위상을 부러워하며 그들처럼 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하지만 그들의 껍데기만 배워서는 얻을수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백조론은 일깨워준다.

그들이 지금처럼 선진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어떤 처절한 과정을 겪었는지, 그리고 국내 기업에 주는 시사점을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야한다.

국내 기업들은 백조가 되지못하고 '미운 오리새끼' 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백조의 대열에 낄수있을까. 국내기업들의 경영상태는 과연 어떤 수준에 와있으며 선진 초일류기업과의 거리를 좁히기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각 기업 연구소나 경제전문가들은 최근 이같은 주제의 연구결과를 잇따라 내놓고있다.

조동성 서울대교수는 '한국기업의 경영 경쟁력 제고를 위한 처방' 이라는 보고서에서 "성숙기 기업경영에서 혁신은 생존의 문제" 라며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몰락할 것" 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국내 10대 기업과 세계 초일류기업 17개의 경영상태를 비교했다.

이 연구소의 이용화 수석연구원은 "국내 10대 기업들은 이익율이 낮고 빚이 많으며 몸집이 무겁고 제조원가가 낮은 부정적인 특성을 나타내고있다" 며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逆순환의 부작용이 계속되고있다" 고 말했다.

◇ 이익률이 낮다 : 미국 인텔사의 경우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 비중은 24.7%에 달한다.

의약품 제조업체인 머크사는 19.6%며 월트디즈니사는 11.4%, IBM도 7.1%에 이른다.

반면 국내 최상위권인 현대.삼성은 2~3%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10그룹 평균으로는 0.3%에 지나지않는다.

세계적인 선진기업과 국내 기업들간에 이익율의 격차가 심한 것이다.

인텔사의 경우 486이 주종인 때에 벌써 펜티엄의 개발을 끝냈다.

또 펜티엄 시대임에도 차기 기종인 펜티엄Ⅱ까지 개발을 완료하고 차차 세대 제품의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국내 업체들은 파악하고있다.

경쟁사에 앞서 차세대제품을 개발한뒤 스스로 시장의 세대교체를 유발함으로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은 이를 시장을 선도하는 '따돌리기 전략' 이라고 부르고있다.

기술력의 우위가 뒷바침된 시장지배력이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례다.

이용화 수석연구원은 "국내 10대 기업은 수익원이 저부가가치 사업에 편중되어 매출이익율이 낮고 경기변동에 따라 수익의 기복도 심하다" 고 말했다.

반면 선진기업의 경우는 매출이나 수익이 모두 꾸준한 성장 패턴을 보인다.

국내 10대기업도 매출성장만은 우상향으로 성장 곡선을 그린다.

시장점유율이 높으면 이익이 뒤따른다는 독과점논리에 의해 점유율 경쟁에 치중하고 기술력과 경영력에 바탕을 둔 이익실현을 뒷전으로 했기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인수 고려대교수는 '21세기를 맞는 우리 기업의 전략과 경영과제' 라는 보고서에서 "우리 기업은 단순한 가격경쟁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경영력에 바탕을 둔 고효율로 역동적인 가격경쟁력과 성능경쟁력을 갖추는 전략으로 전환해야한다" 고 말했다.

◇ 빚이 많다 : 국내 10대 기업중 상위권 그룹의 매출액 대비 금융비용은 3~4% 수준. 이 비율이 10%를 넘어갈때는 기업 경영이 위험수준이라고 본다.

지금 국내 30대기업중 이 비중이 10%이상되는 그룹이 3 - 4군데나 된다.

대농의 경우는 부도유예협약에 지정될때 이 비중이 20%에 달하기도 했다.

국내 30대기업의 현재 자기자본비율은 평균 17.2%.그러나 선진기업인 인텔은 71.1%, 의약품 제조업체인 머크사는 49.3%, GE는 51.9%, 일본의 샤프는 47.1%다.

진로의 경우는 자기자본 비율이 2.69%에 불과했다.

이 모든 수치가 국내기업들이 차입경영을 통해 사업을 확대해온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인텔의 경우 연매출이 2백50억달러지만 차입자금은 2천만달러에 불과하다.

이 정도 부채도 은행과의 관계를 고려한 전략상의 이유로 갖고있는 것이지 자금이 달려 빌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회사는 또 항상 현금잔고로 40억~50억달러를 유지하는등 금융쪽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있다.

일본 도요타의 금융비용은 제로수준으로 '무차입경영' 을 기본방침으로 갖고있다.

또 자금운용에 있어서는 내부금리제라는 제도를 활용하고있다.

이는 한 부서가 사업을 벌일때 외부의 은행이 아닌 도요타내 자금부에서 자금을 빌려쓰며 사업성에따라 금리가 책정되는 것을 말한다.

이 회사는 회사시재금이나 은행잔고등도 현금유동성이 높은 방향으로 갖고간다.

이 때문에 도요타는 '도요타 뱅크' 라고 부르기도 한다.

◇ 제조원가가 높다 : 국내에서 생산하는 4헤드 VCR의 경우 한개 제조원가가 평균 1백20달러선이다.

그러나 자체 기술을 갖지못함으로서 외국 업체에 지불하는 로얄티가 10%선에 달한다.

예컨대 VHS (가정용비디오시스템) 기술을 갖고있는 파나소닉이나 필립스등에 대당 8달러를 줘야한다.

또 프론트 로딩 (앞으로 테이프를 집어넣는 방식) 기술을 갖고있는 샤프에도 4~5달러 지불한다.

이만한 로얄티를 주고나면 원가가 그만큼 많이 들수밖에 없다.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도 기술이 있는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다.

때문에 크로스 라이센스 (로얄티 상호상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하나의 기술을 갖추어 남의 기술에 대한 로얄티를 상쇄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10대 그룹의 경우 매출액 대비 제조원가 비중은 평균 87%에 달한다.

그러나 선진 초일류기업들의 경우 인텔이 46%, IBM 58%, GE 51%, 머크 63%, 월트 디즈니 79%, 도요타 81%등으로 조사됐다.

◇ 몸이 무겁다 : 유럽 최대 중전기회사인 ABB사는 발전소, 철도등 덩치 큰 사업을 하면서도 총자산회전율이 1.1에 달한다.

그만큼 자산이 효율적이고 유동성 높게 운용되고있다는 얘기다.

이 회사는 종업원이 21만명에 이르는 거대기업. 하지만 실상은 1백명~2백명 단위의 소기업들이 1천3백개가 모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기업구조를 갖고있다.

이 회사의 퍼시 바네빅회장은 87년 2천명에 달하던 본사 스탭조직을 일시에 1백70명으로 줄였다.

본사 최고경영진도 바네빅회장을 비롯해 불과 13명뿐이며 이들이 전세계 1백40개국에 퍼져있는 사업들을 관장한다.

특히 소기업 단위인 자회사들은 독자적으로 사업을 수행함으로서 스피드한 경영의 표본으로 꼽히고있다.

반면 석유화학같은 장치산업을 하는 국내기업의 경우는 총자산회전율이 0.5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내 10대 기업의 총자산회전율은 평균 0.73.이 수치가 낮은 것은 땅이나 건물같이 묶여있는 자산이 많아 몸집이 무겁다는 말이다.

특히 국내기업들은 수직계열화의 논리에따라 모든 사업을 자기완결형으로 처리하려는 자급주의적인 경향이 많다는 지적이다.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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