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한달 점검…金회장 사퇴·노조저항·3자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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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달동안 진통을 거듭해온 기아문제에 급기야는 정치권이 개입하고 나섰으나 과연 어떤 활로가 열릴지 아직도 의문이다.

하도 얽히고 설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혼돈스럽다.

지금까지 논란을 거듭해온 기아문제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김선홍회장의 사퇴문제를 비롯해▶노조의 저항▶3자인수여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구태여 나눠보자면 세가지라는 것이지, 사실은 이 모두가 상호 연관되어있다는 점이 사태수습을 어렵게 하고 있는 핵심이다.

채권단의 金회장 사퇴요구에 대해 金회장은 여러차례 사퇴를 결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은행단측과의 접촉에서도 金회장 스스로 사퇴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혀 원만한 사태수습을 기대케 했었다.

그럼에도 번의를 거듭했던 것은 정부나 채권단에 불신뿐 아니라 金회장의 진퇴여부가 노조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문제는 또 3자인수문제와 걸린다.

金회장을 몰아내려는 의도는 기아를 정부가 염두에 둔 제3의 기업에 넘기려는 것이라고 기아측은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아로서는 金회장의 사퇴나 자구노력에 대한 노조동의서 문제의 전제조건으로서 '정부가 제3자인수를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 고 요구해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나 채권단은 "말도 안되는 소리" 라며 강경자세로 일관했으나 최근들어 다소의 융통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임창열 (林昌烈) 통산부장관이 金회장과 비밀회담을 가진 것이 바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자리에서 林장관은 金회장에게 "채권단이나 정부가 金회장의 사표를 요구하는것은 金회장을 몰아내려는 것이 아니다.

사태수습은 오히려 金회장이 중심이 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金회장 사표는 담보의 성격을 지니는 것" 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컨대 정부에 대한 정부측의 뿌리깊은 불신을 털고 채권단의 요청을 들어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게 되어 있다.

설령 金회장이 사퇴를 원한다해도 노조측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측의 명분론은 분명하다.

다른 수많은 재벌회사와는 달리 종업원과 전문경영인이 중심이 돼 지금까지 키워온 유일한 대기업 그룹인데, 지금와서 다른 재벌손에 넘길수 없다는 것이다.

소위 '국민기업론' 이다.

따라서 은행이 도와주기만 하면 金회장을 중심으로 기아를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 정부와 채권단은 전혀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와 채권단의 일치된 판단은 金회장의 진퇴문제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의 노조로서는 기아의 정상화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재벌의 폐해를 철저히 배제하는데는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인 반면, 주인없는 회사로의 비효율 경영체제가 바로 오늘의 기아위기를 초래한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노조문제를 이참에 해결해야 기아의 정상화작업이 시작될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채권단의 확고한 입장이다.

반대로 기아노조로서는 기아만의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만약 기아노조가 허물어질 경우 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 전체에 미칠 파급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조문제를 놓고 정부로서는 이번에야말로 노동시장의 경직성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는 반면, 노동계로서는 이번에 밀리면 한없이 밀린다는 위기의식으로 정면대응을 계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문제가 한달동안 전혀 진전없이 꼬이고 있는 진짜 이유는 여기서 찾아진다고 볼수 있다.

3자인수문제도 마찬가지다.

누가 기아를 인수하든간에 기존 기아노조로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정부측 설명대로 현정권 아래서는 3자인수 추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돼있다.

최악의 코스인 부도를 거친 법정관리 - 3자인수로 간다해도 어차피 다음 정권에 가서나 진척될 사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보사태의 후유증에 자라목이 된 직업관료들이나 은행들이 3자인수같은 위험부담을 감수할리 없다고 봐야한다.

한달이 지난 지금상태에서 예상할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金회장이 남아있는 상태를 전제로 하는 은행 자금관리형태로 가는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도 상당한 시련이 예상된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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