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비판하라고 총장 임기 있는 것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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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수 검찰총장이 15일 저녁 기자들의 질문에 함구한 채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임현동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국기문란 행위'라는 표현을 써가며 전날 송광수 검찰총장의 대검 중수부 폐지 반대 발언을 엄중 질책했다. 극히 이례적이다. 발단은 송 총장이 중수부 폐지설과 관련해 '검찰 무력화 음모'라면서 "중수부 수사가 문제가 있다면 내가 먼저 나의 목을 치겠다"고까지 한 데서 비롯됐다.

노 대통령은 작심한 듯 국무회의 시작부터 미리 써간 메모를 읽어 내려갔다. "정부 내외의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에 근거한 집단이기적 목소리가 중구난방으로 너무 심하게 나오고 있다"고 운을 뗐다. 노 대통령은 또 "변화의 흐름을 거역하고자 하는 저항이 완강하다"고도 했다.

이어 노 대통령이 "검찰총장의 발언은 국가기강 문란의 우려를 줄 수도 있다"는 등의 섬뜩한 지적을 이어가는 순간 회의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질책은 송 총장의 발언 수위가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라며 "방관할 경우 자칫 전체 검찰의 기강 해이로 이어질 것을 걱정한 것 같다"고 기류를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도 검찰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또 마무리 말에서는 "지금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은 없지만 그렇다고 할 일을 하는 대통령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부패방지위 산하에 신설되는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에 검사 등 고위공직자에 대해 수사권을 부여하는 안이 검토되고 대검 중수부의 기능 축소가 예상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독점해 온 '수사 권력'의 분산 흐름에 예상되는 검찰의 기득권적 저항에 미리 일침을 놓은 것 아니겠느냐"고도 해석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송 총장의 거취 문제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도 했다. "검찰총장의 임기제라는 것은 수사권의 독립을 위해 있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리곤 "정부의 정책에 관해 일방적으로 강한 발언권을 행사하라고 (임기가)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국기문란'이라는 표현까지 쓴 마당이라 송 총장에 대해 자진 사퇴를 종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으나 윤태영 대변인은 "원칙론적 얘기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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