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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61. 헤비메탈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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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헤비 메탈은 록 음악 가운데 가장 강한 종류다.

'하드 록' 으로 더 알려진 격정의 폭발음이다.

록 음악 자체가 폭발성을 전제한 음악이므로 강성의 헤비 메탈은 사운드의 파괴력을 극대화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하지 않거나 시끄럽지 않다면 그것은 헤비 메탈이 아니다.

헤비 메탈은 분명 사운드의 터질 듯한 볼륨을 미학으로 삼는다.

그런데 다름 아닌 이러한 성질이 피끓는 젊음의 청감각과 궁합이 딱 들어 맞는다.

덩치 큰 소리가 체질인 청춘들은 그래서 헤비 메탈이 좋다.

헤비 메탈은 따라서 록의 '하드 코어' 가 된다.

록에 심취한 사림이 록의 계단을 쭉 밟아 올라가면 종국에는 헤비 메탈이란 꼭대기에 도착하고야 만다.

주변에 만약 록 음악통인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중 상당수가 헤비 메탈 마니아인 이유가 그래서이다.

하지만 이 열광의 장르만큼 오욕으로 점철된 장르도 없을 것이다.

록이 50년대 중반 탄생하자마자 기존 음악계와 제도권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는데 어찌 하드 코어인 헤비 메탈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겠는가.

록부터가 초기에 더러운 음악이니 고약한 최음제니, 심지어 공산주의 음악이니 하는 기성사회의 엄청난 질타를 감수해야 했다.

헤비 메탈은 아예 외형인 사운드만 가지고도 비판을 받았다.

온당한 음악적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소란스러우면 과연 음악 축에 못끼는 것인가.

록 평론가 레스터 뱅스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70년대 초반 하드 록이란 말밖에 없었을 때 '중금속' 이란 뜻인 헤비 메탈이란 신조어를 보편화시킨 인물이다.

"비방하는 사람들은 헤비 메탈이 한갖 소음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디스토션'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바로 추종자들로 하여금 그토록 헤비 메탈에 열광케하는 정확한 이유다."

레스터 뱅스의 지적에는 폭발적인 소음도 분명히 음악이라는 주장이 함께 담겨 있다.

듣기 좋은 선율과 전통 음악 문법에 따라 만들어진 것만이 음악은 아니다.

선율이 파괴되고 전통을 거스른 소리도 음악일 수 있다.

헤비 메탈이 음악이 아니라는 주장은 주로 기존 음에 길들여진, 그러면서 그것과 다른 음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논리의 부재가 빚어진다.

사운드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것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헤비 메탈의 질과 관련한 더 큰 비난이 있다.

이를테면 헤비 메탈이 악마주의를 조장하고 죽음과 자살, 외설, 난잡한 섹스 등을 부추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청취자의 정서에 극도로 유해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다.

이것이 헤비 메탈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 대목이다.

헤비 메탈은 현장성이 강한 공연 중심의 음악이다.

60년대말 개화한 이후로 헤비 메탈은 이러한 성격 때문에 때로 공연에서 극단의 표현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일례로 70년대 중반 앨리스 쿠퍼의 공연은 극적 요소가 강조된 '충격' 그 자체였다.

파격적인 분장과 차림은 차치하고 무대에는 거대한 보아 뱀이 등장하고 교수형이 시범되는 등 살벌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이 시점부터 헤비 메탈이 악마의 음악이라는 보수주의쪽의 시각이 출연했다.

보수적인 제도권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헤비 메탈을 '복마전 (伏魔殿)' 으로 등식화하고 즉각적인 퇴치를 촉구했다.

앨리스 쿠퍼 뿐만 아니라 블랙 새버스.키스.주다스 프리스트.머틀리 크루.건스 앤 로지스 등 맣은 유명 메탈 그룹들이 잇따라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이처럼 악마의 음악이라고 공격하는 것에 쓰러진 그룹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헤비 메탈의 전설, 록의 신화라고 평가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두고 헤비 메탈의 '성장 미스터리' 라고도 한다.

왜 그런가.

구미의 록 음악계는 헤비 메탈 밴드의 광극을 악마주의가 아닌 하나의 충격기법으로 해석한다.

쇼크를 가하기 위해 간혹 악마를 소재로 쓸 따름이지 사탄을 숭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어디까지나 아티스트 상상력의 소산이지 행동강령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쇼크는 또한 저항의 표출방식이기도 하다.

사탄을 내걸어 지배 종교이데올로기의 권위와 보이지 않는 억압에 반발하는 측면이다.

이러니 종교계가 헤비 메탈 음악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상호 불인정' 인 이 구도는 풀리기가 어렵다.

헤비 메탈은 저질과 퇴폐라는 오명을 딛고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것은 록의 분파로 분명한 록의 하위 장르다.

그러나 헤비 메탈은 록 만큼이나 수많은 스타일로 가지치기에 성공했다.

비록 장르의 분화만 일궈낸 것이 아니라 국제화.세계화도 이룩했다.

영국과 미국의 테두리를 넘어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막강 세력을 구축했다.

가까운 일본도 헤비 메탈의 강국이다.

에릭 클랩튼이 이끈 그룹 크림과 지미 헨드릭스를 시조로 하는 헤비 메탈은 68년과 69년에 두각을 나타낸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에 의해 탄생과 거의 동시에 전성기를 맞는다.

블랙 새버스도 창시자들의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고 이후 미국의 에어로스미스.그랜드 펑크 레일로드.키스와 캐나다의 러시 그리고 딥 퍼플의 분신인 레인보우 등 잇달아 스타 그룹들이 출현했다.

80년대 초반에는 주다스 프리스트와 호주의 AC/DC가 급부상했으며 잠시 주춤한 사이 영국 메탈의 '뉴 웨이브' 인 데프 레퍼드.아이언 메이든과 미국의 '팝 메탈' 그룹인 밴 헤일런.머틀리 크루 등 신진 세력이 맹위를 떨쳤다.

80년대는 헤비 메탈이 대중성과 상업성을 확립한 시대였다.

본 조비는 어린 10대들도 헤비 메탈을 듣게끔 했다.

차트를 주름잡으면서 헤비 메탈이 예의 강력한 대중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막는 데에는 탱크주의 사운드의 그룹 메탈리카로 대표되는 '슬래시 메탈' 이라는 새로운 사운드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밖에 잉베이 말름스틴의 '바로크 메탈' 도 팬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위에 나열된 그룹들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헤비 메탈팬이 아니더라도 한두곡의 대표곡쯤은 능히 떠올린다.

이것은 국내의 헤비 메탈 음악저변이 의외로 넓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40대인 기성세대들 가운데도 젊었을 때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에 열광한 사람들이 많다.

최근 문제가 된 데스 메탈은 "극단적 소음의 테러" 라고 일컬어질 만큼 사운드와 지향이 과격하다.

80년대말에 생겨나 90년대 들어서 급속도로 마니아층을 확보하게 된 것은 일체의 기존 형식을 깨고 내뿜어대는 통렬함 때문이다.

헤비 메탈 음악에서는 통념과는 달리 예술적 기능이 중시된다.

일렉트릭 기타를 잘 연주하지 못하면 이 음악을 하기가 어렵다.

헤비 메탈이 전기기타 발전사와 궤를 함께하고 유명한 기타 연주자를 끊임없이 배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탁월한 연주력은 양념처럼 한두곡씩 수록 되는 발라드에서도 간혹 확인할 수 있다.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 , 주다스 프리스트의 '동트기 전에 (Before the Dawn)' 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90년대에 와서 얼터너티브 록과 펑크가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헤비 메탈은 일대 위기를 맞았다.

이 시대의 록은 '기타를 못쳐도 음악을 할 수 있다' 는 자세가 슬로건이다.

아마추어 밴드가 득시글거리면서 프로인 헤비 메탈이 휘청거리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헤비 메탈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스타그룹이 즐비하고 관련 장르도 다수라는 점은 여전히 헤비 메탈의 시장 지분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헤비 메탈의 통쾌한 사운드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셈이다.

헤비 메탈이 정말 악마의 음악이라면 그처럼 지속적인 인기 토대를 구축하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시장의 주인인 대중은 언제나 현명하다.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른 음악을 인정하는 '공존의 사고방식' 이 기초가 돼야한다.

제도권 음악이 있으면 반제도권 음악이 있는 것이고 이런 음악, 저런 음악, 별의별 음악이 다 있는 법이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성의 원리' 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머라이어 캐리나 마이클 잭슨의 음악만 들으라는 획일화의 강제나 다름없다.

음악에 대한 외과적 수술이나 제도권이 주도하는 인식 강요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서구 음악사회가 터득한 역사적 교훈이다.

그 교훈을 실로 헤비 메탈만큼 웅변하는 음악은 없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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