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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형님이 마련해준 알뜰한 돌잔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얼마 전 작은 아이가 돌을 맞이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결혼한지 4년이 됐지만 음식다운 음식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여러 사람을 초대해 대접하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다.

요즘 사람들은 음식 만들기를 힘들어해 돈만 주면 음식을 차려주는 뷔페 음식점에서 돌잔치를 많이 한다고 한다.

작은 아이의 돌 잔치를 뷔페에서 하겠다고 했더니 형님은 큰 아이의 백일과 돌처럼 작은 아이도 당신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서 하자고 했다.

요리는 잘 못하더라도 손수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면 맛이 좋아지고 이런 기회에 친지들이 모여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리고 뷔페란 곳은 시간에 쫓기듯 음식만 먹고 일어나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궂은일 마다않고 도와준다는 형님께 감사하면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님이 가지고 오신 건 양이 적은 반찬 꾸러미들 뿐이었다.

원래 손이 큰 분이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작은 양으로 어떻게 손님을 대접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형님은 돌을 맞이하기 전날 김포.난지도등에 있는 쓰레기 처리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형님은 그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얘기와 땅 속에 쓰레기를 묻어두는데 물기를 꼭꼭 짜지 않아 그 쓰레기더미가 차차 무너져 내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면서 모자란 듯 음식을 먹어야 버리는 일이 없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많이 산 나물이나 과일등은 냉장고에 그대로 두는 것보다 이웃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으면 서로 오가는 정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형님은 하루 일정으로 세 곳을 다녀 오셨지만 느끼는 바가 큰 것같았다.

형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것이 많았고 작은 일이지만 싱크대 배수구에 묻은 음식물 쓰레기를 짜지 않고 버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박현남〈서울동대문구답십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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