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추락 참사]서울이송 부상자 주변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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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일 오전3시 김포공항을 통해 C - 9수송기 편으로 귀국, 4개 병원에 분산이송돼 전문치료에 들어간 부상자들은 대체로 상태가 양호해 가족과 의료진은 일단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부상자는 극도의 대인기피증을 나타내는등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보이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또 사고 발생 사흘째인 이날 유가족들도 초기의 격앙됐던 감정을 누르고 대한항공 직원들과 면담을 갖는등 차츰 안정을 찾아 가고 있다.

…이날 오전 귀국해 앰뷸런스로 삼성서울병원에 이송되던 KBS 홍성현 (洪性玹) 보도국장의 둘째딸 화경 (和京.15) 양은 동승한 의사에게 "엄마를 찾아달라" 며 울먹여 주위의 눈시울을 적셨다.

중환자실에서 치료중인 화경양은 치료를 받는 고통속에서도 저세상으로 떠난 아버지등 가족들을 붙잡으려는 듯 곰인형을 꼭 껴앉고 놓지 않아 주위를 숙연케 했다.

"엄마 찾아 주세요"

…국내로 후송된 부상자들은 서울 한강성심병원등 4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의료진의 1차 검진결과 사고 당시 충격과 화재로 골절상과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이 위독한 환자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강성심병원에 입원중인 부상자중 괌 현지 병원에서 50%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던 金지영 (12) 양은 35%정도, 40%로 알려졌던 대한항공 여승무원 吳상희 (24) 씨는 25%정도인 것으로 판명. 한강성심병원 최창식 (崔昶植.62) 원장은 "괌 현지 병원에서의 진단결과보다 부상자들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생명이 위독한 부상자는 없다" 고 밝혔다.

…이날 오전3시53분쯤 앰뷸런스로 한강성심병원에 도착한 송윤호 (宋允浩.28.서울마포구마포동) 씨등 4명은 응급처치를 받은 뒤 화상센터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맨 처음 도착한 宋씨는 얼굴등에 화상을 입어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옮겨졌는데 기다리던 어머니 이홍영 (李洪英.55) 씨가 "윤호야, 엄마 여기 있다" 고 외치자 宋씨는 감았던 눈을 떠 어머니를 찾는 듯 고개를 돌리기도.

…이용호 (李龍浩.32.회사원.서울마포구마포동) 씨와 홍현성 (洪賢成.36.요식업.괌 거주) 씨는 8일 새벽 국립의료원에 후송된뒤 2시간여에 걸쳐 CT촬영등 정밀검사를 받고 별관 1층 105호실에 함께 입원.

정신科 치료 필요

李씨는 정밀검사 결과 괌 해군병원 진단서에 기록되지 않은 '척추 압박 골절상' 이 추가로 밝혀져 가족들이 한때 긴장했으나 국립의료원측은 "신경을 다치지 않아 3개월 정도 안정을 취하면 완쾌될 것" 으로 전망. 국립의료원 조덕연 (趙德衍.57) 원장은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두사람 모두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하다" 고 밝혔다.

…국립의료원에 도착할때부터 얼굴을 담요로 가리고 취재진을 피한 李씨는 한때 인터뷰도 거절, 사고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이 역력. 李씨는 최광 (崔洸) 보건복지부장관의 문병때 함께 들어온 취재진에게 병실을 나가줄 것을 요청하는등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조덕연원장은 "외상을 치료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신과적 치료도 병행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탑승객 가족들은 이날 오전 대책회의를 갖고 ▶대책본부의 명칭을 '유가족대책본부' 로 일원화하고▶합동분향소 설치▶장례절차▶괌 현지대표와의 정보교환을 위한 핫라인 설치등 6개항을 대한항공측에 요구. 그러나 이날 유가족들은 지난 이틀의 감정적 대응과는 달리 비교적 차분한 모습으로 대한항공 전담직원과 면담을 갖는등 갈수록 안정을 되찾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 대한항공측은 가족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괌 현지와의 무료전화및 핫라인을 개설.운영하고 9일중 합동분향소를 88체육관에 설치하며, 늦어도 1주일 이내에 신원확인처리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답변.

"정치인 방문 사절"

…이틀동안 대한항공 중앙교육연수원 2층 바닥에서 밤을 새운 유가족들은 "앞으로 정치인의 방문을 사양한다" 며 한목소리로 울분을 토로. 목정준 (41.서울마포구창전동) 씨는 "도대체 뭣때문에 정치인이나 시장이 오는지 모르겠다.

그냥 빙 둘러보고 가는 모습은 흡사 한표 얻기위해 신문에 사진 한번 나겠다는 속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며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특히 조순 (趙淳) 서울시장이 7일 대책본부를 방문, 유가족과 말한마디 나누지 않고 로비를 한바퀴 빙 둘러보고 간데 대해 흥분. 김태진.김기찬.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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