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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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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동 사막 일대엔 아라비아꼬리치레가 산다. 갈색 깃털, 자그마한 몸집의 이 새에게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발견한 건 조류학자 아모쓰 자하비다. 먹이를 먼저 차지하려 애쓰기는커녕 다른 새들에게 서로 나눠주겠다며 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무한 이기주의로 무장해도 살기 힘든 야생에서 이들이 ‘기부 천사’가 되려 안달인 이유는 뭘까. 자하비의 해석은 이렇다. “나, 남들 도와줄 만큼 능력 있는 놈이거든.” 나눔으로 사회적 지위를 과시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려는 속셈이란 거다.

이처럼 짝짓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아라비아꼬리치레의 경쟁심은 무리에도 이득을 준다. 그러나 세상엔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공작 꼬리나 엘크의 뿔이 대표적이다. 공작 꼬리가 길고 화려할수록 암컷이 쉬 넘어오고, 엘크 뿔이 크고 단단할수록 결투 승률이 높아져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런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널리 퍼지는 이유다. 하지만 긴 꼬리는 몸을 굼뜨게 하고 큰 뿔은 나무에 걸려 포식자로부터 달아날 때 거추장스럽다. ‘더 길게 더 크게’ 경쟁이 집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셈이다.

로버트 프랭크(경제학)코넬대 교수는 이를 군비 경쟁에 빗댔다. 상대보다 가공할 무기를 갖추려 앞다퉈 돈을 퍼붓지만 그 효과는 상쇄돼 버리고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소모전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엘크의 세계에도 ‘군비 축소 협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엘크 수컷들이 합의해 죄다 뿔을 절반 크기로 줄인다 치자. 어차피 싸움은 뿔의 상대적인 크기로 결판나니 경쟁의 결과는 전과 같으면서 온 무리가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터다. 알고 보면 인간 사회의 일부일처제도 군비 통제와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일부다처제라면 여러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소수를 빼곤 대부분 남자가 몇 안 되는 여자를 놓고 살벌한 경쟁을 벌여야 할 테니 말이다.

어디 군비 경쟁이 짝짓기 시장에만 국한될까. 망국병이라 일컬어지는 사교육 경쟁이 꼭 그렇다. ‘옆집 아이에게 뒤지게 할 수 없다’며 온 국민이 무한 경쟁을 벌인다. 집집마다 애들은 골병 들고 부모는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지경이다. 고맙게도 서울의 덕성여중이 군비 축소 협약을 주창하고 나섰다. 학원을 끊고 방과 후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교육 없애기 실험을 펼치고 있다. 실질적인 다자간 협약이 될 수 있게 더 많은 학교가 동참하길, 그래서 모두의 삶의 질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이참에 사교육 후속편 격인 스펙 경쟁, 성형 경쟁에도 군축 바람이 좀 불면 좋으련만 꿈이 너무 야무지다 하려나.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