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영화산업 재능있는 젊은감독 잇단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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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싱가포르의 영화산업이 젊고 재능있는 젊은 감독의 등장으로 20여년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는 에릭 쿠 (32) 라는 젊은 싱가포르 감독이 만든 '12층' 이라는 영화가 초청됐다.

이 영화는 세계 영화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판권계약 요청이 잇따랐다.

싱가포르 영화가 칸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층' 은 싱가포르 한 서민아파트에 사는 세 가족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 쿠 감독은 30만싱가포르달러 (약 1억9천만원) 의 적은 제작비로 싱가포르인들의 삶을 적절히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영화를 공부한 쿠는 2년전 국수집 주인과 단골창녀의 사랑을 그린 첫 작품 '미폭만' 을 통해 황폐한 싱가포르인들의 일상을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으며 싱가포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다.

그는 폴란드의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향을 받았으며 미국의 독립영화에서 B급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키드' 다.

싱가포르 영화계는 그의 등장으로 70년대이후 홍콩.대만 등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싱가포르 영화산업이 부흥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기대가 크다.

쿠 이외에도 '신 또는 개' 의 휴고 앙 감독이나 '잘 가지 않는 길' 의 림수아트옌 감독등 신예들이 뒤를 이어 기대는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장애물도 적지 않다.

우선 인구가 3백만명에 불과하고 그중 절반이 영어사용자, 나머지는 중국.말레이.타밀계로 나뉘어 있는 싱가포르는 언어.문화의 통일성이 적어 문화상품인 영화가 성공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인근 아시아시장도 청룽 (成龍) 등의 홍콩영화가 장악하고 있어 틈새를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

또한 그간의 영화산업의 부진에 따라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싱가포르 특유의 심한 검열도 자유로운 창작에 장애가 되고 있다.

싱가포르 영화평론가 샌디 탄은 그러나 "쿠 감독등의 등장은 싱가포르 영화계 활성화에 큰 자극이 될 것" 이라며 "일정수준 이상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고 싶어하게 마련" 이라고 기대했다.

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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