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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외교정책의 윤리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티모르섬은 16세기 이래 유럽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처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가 들어왔으며,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협상을 벌여 서쪽은 네덜란드, 동쪽은 포르투갈이 각각 차지했다.

제2차 대전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는 1950년 네덜란드령 서티모르를 차지했으나, 동티모르는 계속 포르투갈이 지배했다.

74년 포르투갈에 사회당정권이 들어서면서 해외식민지들을 독립시키기로 방침을 정하자 동티모르에서도 독립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결과 75년 11월28일 동티모르인민민주공화국이 수립됐다.

그러나독립선포 9일만에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침공하고, 이듬해 자국 (自國) 영토로 선언해버렸다.

미국은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벌이는 좌익정권 추방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그러나 유엔총회는 인도네시아군이 즉각 철수할 것을 결의했다.

유엔은 지금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요구하는 동티모르인들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

75년 침공 당시 동티모르 인구는 68만8천명이었다.

그러나 최근 인구조사에 따르면 65만명에 불과하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인구의 자연증가를 고려, 최소 2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군은 빈약한 무기의 게릴라 토벌에 전투기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노동당정부의 대외정책을 맡은 로빈 쿡 외무장관은 취임 직후 인권을 외교의 중심에 두는 '윤리적' 외교정책을 펴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같은 약속은 처음부터 암초에 부닥쳤다.

인권탄압국가 인도네시아에 대한 무기수출 문제가 그것이다.

영국은 인도네시아에 호크전투기 16대 1억6천만파운드, 스코피언 장갑차 50대 1억파운드 판매계약을 해놓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영국의 무기수출 50억파운드중 10%를 구입한 중요한 고객이다.

인도네시아는 영국이 인권을 문제삼으면 더 이상 무기를 사지 않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노동당정부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무기판매 계약이 보수당정부 시절에 맺은 것이며, 또 영국제 무기가 인권탄압에 쓰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서 무기수출을 계속 허용할 방침임을 확인했다.

인권이다, 윤리다 하는 고매한 이상도 국익 앞에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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