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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스크린 쿼터 의존 벗어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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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언젠가 닥칠 문제라고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이며, 축소 폭이 어느 정도인지가 더 관심거리였다. 놀라운 일은 그동안 강경한 어조로 '축소나 폐지는 안 된다'고 방패 역할을 자임하던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관계자들을 면담하며 '조정과 변화'의 불가피성을 통보했다는 점이다. 스크린 쿼터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주무부처인 문화부가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미투자협정 논의 과정에서 외교통상부 등은 스크린 쿼터제의 폐지나 점진적인 축소를 주장했고, 노무현 대통령 또한 지난해 11월께부터 간헐적으로 '축소'와 관련된 말들을 내놓았다. 언젠가는 줄일 것이라는 '예고'가 구체적인 발표로 나타난 셈이다.

*** 반대하던 문화장관도 후퇴

1967년부터 시행된 스크린 쿼터제는 '한국영화 보호'라는 선언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영화사.극장 측 모두 턱밑에 붙은 혹같이 여겼다. 한국영화 제작과 외국영화 수입을 겸하고 있던 영화사들은 내심 외국영화 상영일수를 더 많이 확보하기를 원했고, 극장들 역시 흥행이 불안한 한국영화보다 외국영화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자유화 이후부터 영화사와 극장 측은 이 제도의 시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때로는 적대적 충돌로까지 치달았다. 더 이상 외국영화 수입으로 이익을 얻기가 어려워진 영화사들은 극장 측에 스크린 쿼터 준수를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고, 극장들은 반발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불신했고, 극장들은 기피했으며 영화사들은 강력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한국영화 보호'는 관념적 논쟁을 반복시켰을 뿐 당초 의도에 이르지는 못했다.

역설적으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키운 것은 제도를 이용한 보호가 아니라 치열한 노력과 의지만이 중요한 시장 상황이었다.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든가, 필사적인 노력으로 생존하든가 선택해야 했던 상황에서 관객이 원하는 영화가 무엇인가를 절박하게 고민하고 기술력을 높이며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개발하는 일이 뒤따랐다. 극장 시설의 고급화.다양화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서편제' '투캅스' '결혼이야기' 같은 영화들은 그런 노력이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난 경우들이며 '쉬리'는 폭발점이었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들로 이어지는 최근의 현상은 한국영화의 자생적 안정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은 영화사도 극장도 스크린 쿼터 문제로 고심하지 않는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극장들도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고, 영화사들 또한 규정 이상으로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대해 시비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문화적으로, 산업적으로 중요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영화만이 유일한 존재일 수는 없다. 한국영화 흥행기록이 1년이 멀다하고 바뀌며,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르고, 해외 배급까지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외국영화의 시장 잠식' '문화주권'을 앞세우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며 감상적 선동이다.

*** '문화주권' 앞세우는 건 지나쳐

국내시장에서는 이미 외국영화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유통되고 있다. 스크린 쿼터제가 없어지더라도 더 많은 외국영화(특히 미국영화)가 유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극장이 어떤 영화를 상영할 것인가 선택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사업적 판단에 근거하며 그 판단의 바탕은 관객의 선호와 추세다.

영화계는 제도로서의 효용을 잃어버린 스크린 쿼터제에 연연하기보다 제작 기금, 유통망 확보 같은 다른 요소의 지원을 제안하며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필요하다. 88년의 '직배 저지' 시위 때처럼 아무런 대안도 얻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시장을 열어준 '협상의 실패'를 또다시 반복할 것인가.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