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주제 '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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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금 서울은 방의 도시다.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해 눈물겹게 고투를 벌여야 했던 거주공간으로서의 방은 이제 매력을 잃었다. 거리에 널린 게 방이다. 지하 노래방, 1층 찜질방, 2층 소주방, 3층 전화방, 4층 비디오방, 5층 PC방으로 이어지는 오락 종합선물세트 같은 건물이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골라잡은 방에서 도시인은 청각.촉각.후각.미각.시각을 활짝 열고 움츠렸던 욕망을 발산한다.

한국 도시에서 방은 복합적 사회문화현상이 됐다.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9월 12일~11월 7일) 한국관은 가히 대한민국적 현상이라 할 만한 '방(bAng)의 도시'를 주제로 내세웠다. 세계 건축계가 온갖 방으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 한국 도시를 함께 즐기며 룸(room)과는 다른 '방(bAng)'을 체험한다.


불과 50년 만에 90%를 육박하는 한국의 도시화율 속에서 방은 다양한 기능으로 분열하며 도시 속으로 가출했다. 김광수·송재호·유석연씨가보여주는 ‘방의 도시’.

노래방을 설치작업으로 표현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미술가 이불(40)씨에 이어 건축가가 한국 '방 문화'를 들고 베니스에 진출한다. 찜질방이 예술품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은 정기용(59.기용건축 대표)씨는 "전통적 집짓기 구실을 넘어 각종 변종들이 태어나고 진화하는 한국 건축공간을 통해 현대 건축가가 맞닥뜨린 도시 건축의 문제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한국관 대표작가로 뽑은 건축가는 김광수(37.이화여대 건축공학과 교수), 송재호(39.송재호건축사사무소 대표), 유석연(35.홍익대 건축대 초빙교수)씨다. 세 건축가가 공동작업으로 방의 현상을 분석해 방의 족보작업과 재구성을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 안에 수많은 방을 만들어 관람객이 스스로 한국의 방을 즐기고 건축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김 교수는"숨가쁘게 탈바꿈해온 도시 속에서 '방'들이 집에서 가출했다는 가설을 세웠다"고 했다. 송 대표는 "'방'을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아 도시의 바이러스이면서 항체이고 동시에 원형세포로 그렸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항상 접속돼 있는 우리의 도시를 꿈꾸면서 마을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동체 시설로서의 방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올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는 한국관과 함께 총감독인 커트 포스터(68)가 꾸리는 주제관에 최문규(43.가아건축 대표).조민석(38.매스스터디즈 대표)씨 등이 설계한 쌈지(대표 천호균)의 '딸기 테마 파크-딸기가 좋아'가 초청받았고, 특별전에 김선아씨가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젊은 한국 건축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집중 조명받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정기용 커미셔너는 "휴대전화에도 수천 개의 방이 있다고 보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그런 가상현실을 많이 체험하는 곳이 한국"이라며 "방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광장이 있고 세계가 있다고 발상을 전환하는 점이 이번 건축전의 주제인 '변용'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설명했다. 02-760-4573.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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