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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이홍구 칼럼

힐러리 장관 방한에 거는 기대와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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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취임한 지 채 한 달도 안 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아시아, 특히 서울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세계는 지금 혹독한 경제위기를 겪으며 역사적 전환기에 접어들었고, 냉전의 막이 내리며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던 미국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국제 질서를 유지할 수 없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로 제도화된 대서양 공동체란 한 날개만으로는 더 이상 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역사의 중심축이 점차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면서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막이 올라가고 있다. 다행히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대륙 국가다. 이같이 유리한 지리적 여건을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차원에 연계시키며 앞으로는 태평양 국가로서 새로운 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적극 참여하여 대서양 공동체와 태평양 국가라는 두 날개로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첫 외교 행보를 동아시아로 잡은 힐러리 장관의 혜안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국인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힐러리 장관의 취임을 환영하는 것은 미국 정치의 어느 한쪽만을 지지해서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이 계속 강력한 힘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9·11 이후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한국인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이 새롭게 활력을 얻은 미국의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 경선으로부터 대통령 선거와 신정부 출범에 이르는 대 서사시와 같은 민주정치의 드라마 속에서 힐러리 여사가 보여 준 정치인의 품격과 멋은 어렵사리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아직도 불안정한 민주정치의 굴절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힐러리 장관의 아시아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미국정책의 목표와 전략이 한 차원 격상되리라 기대되는 것이다.

올해 64년째로 접어든 한반도 분단 상황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성을 더해가고 있다. 한국의 개방정책과 달리 쇄국을 고집해 온 북한은 국민의 인권과 복지를 외면한 채 심각한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으면서도 핵무기 개발을 앞세운 군사 대국화의 시도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체제의 기형화를 이룸으로써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전략적 불균형이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이 깨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걸음 나아가 북한의 핵무장은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서 한국과 일본만이 비핵 국가가 되는 전략적 불균형을 초래하는데, 이로부터 파생할 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들은 중국을 포함한 당사국들에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이렇듯 아무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의 기형화를 막고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따라서 힐러리 장관의 시대적 책무인 것이다. 이에 부응하려면 무엇보다 동맹국 간에, 특히 한·미 간에 공동 인식과 보조를 새롭게 가다듬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한반도의 분단과 대결 문제는 단순히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만 국한해 처리될 수 없고 북한이란 특수 체제를 어떻게 동아시아 지역 및 세계 질서에 평화적으로 동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해결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지혜·신뢰·인내력을 한국과 미국이 함께 나누어 갖는 노력과 작업이 이번 방문을 계기로 시작되리라 믿는다.

힐러리 장관의 방문에 너무나 큰 기대를 걸기 때문에 한두 가지 우려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첫째로 공동의 인식·전략·추진 계획을 새롭게 다듬는 어려운 작업이 과연 미국과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추진될 수 있을지, 그리고 충분한 상호 협의와 합의 및 이에 따른 높은 수준의 신뢰가 지체 없이 조성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둘째로 미국이 계속 당면할 수밖에 없는 국제 문제의 홍수 속에서 과연 아시아, 특히 한반도 문제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지난 몇 해 동안 중동사태의 시급성을 앞세워 아시아는 뒷전으로 내몰리지 않았던가. 미국과 중국 간의 광범위한 협력이 모색되는 과정에서도 미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우리의 우려가 기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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