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몸도 ‘가뭄’ 앓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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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15면

오랜 겨울 끝에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그동안 억새를 태우는 대보름 민속축제마저 가뭄 때문에 큰 화재 참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맘때면 우리 인체도 ‘가뭄병’을 앓는다. 대기가 건조한 데다 추운 날씨로 갈증을 느끼지 못해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지 않는 탓이다. 인체의 물 부족으로 나타나는 질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혈액이 걸쭉해지는 동맥경화
개그로 인기 정상에 올랐던 고 김형곤씨. 그의 사망 추정 질환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다이어트로 몸무게를 30㎏이나 빼고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도 왜 혈관이 막혔을까. 전문가들은 운동으로 땀을 빼고, 다시 사우나를 함으로써 수분을 추가로 손실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일 것으로 추정한다. 걸쭉해진 혈액이 좁아진 동맥을 빠져나가지 못해 심장마비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성인의 몸무게 중 수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정도. 수량이 풍부할수록 강의 흐름이 좋아지듯 혈액량과 깨끗한 혈류는 혈액의 원활한 흐름과 비례한다. 신촌세브란스 심장내과 정남식 교수는 “물을 넉넉히 마시면 혈액이 떡처럼 뭉치는 혈전을 방지할 수 있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체내의 물은 각종 유해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는 기능도 한다. 실제 물을 충분히 마시는 사람은 신장결석이나 방광암 발생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눈 깜박 횟수 적으면 안구건조증 위험
물이 없으면 당장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는 어디일까. 외부와 노출된 눈이다. 눈물샘에서 당장 눈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눈이 뻑뻑해지면서 충혈된다. 눈물의 성분은 대부분 물이지만 쉽게 증발하지 못하도록 지방이 함유돼 있다. 여기에 균을 처리하는 항균물질과 포도당·소금 성분 등이 극소량 들어 있어 끈끈한 점액질 형태를 띠는 것이다.

눈물막이 건조해지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눈물 생성이 부족하거나, 눈물막이 형성되지 않고 빨리 증발돼 버리는 경우다. 하루 중에는 아침 기상 직후 가장 뻑뻑하다. 자고 있을 때 눈물이 적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TV를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해도 건조증이 심하다. 이는 눈을 자주 깜박거리지 않아 눈물막의 수분이 대기로 증발한 탓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안과 송종석 교수팀은 고등학생 15명을 대상으로 컴퓨터 작업별 눈 깜박 횟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컴퓨터 게임을 할 때 평균 눈 깜박임 횟수는 분당 5.44회로 인터넷 강의를 시청할 때 분당 20.63회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독서 또는 컴퓨터 작업을 하지 않을 때의 눈 깜박임 횟수는 분당 15~20회 정도. 따라서 안구건조증이 있는 사람은 컴퓨터 작업시 실내 가습기가 필수다.

침 적시면 더 악화되는 입술건조증
건조한 겨울에 가장 고통을 호소하는 부위가 피부다. 피부건조증은 피부의 수분 함유량이 10% 이하인 상태를 말한다. 육안으로 봐도 피부가 거칠어지고, 표피가 벗겨져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입술 피부는 건조한 대기에 더 취약하다. 피지선과 모공이 없기 때문에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입술 피부의 두께는 다른 부위의 절반 정도로 얇고 각질층도 없어 자연 보습막이 형성되지 않는다. 심한 경우 구순질환으로 분류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입술이 마르면 무의식적으로 침으로 적시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침이 마르면서 입술 수분을 빼앗고, 침에 함유된 아밀라제·말타제 같은 소화효소가 입술 피부를 자극해 염증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또 입술이 트면 마른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기도 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습관이다. 피부조직이 파괴되면서 2차 감염이 일어나 농포가 생긴다.

최선의 예방법은 입술보호제를 자주 발라주는 것. 요즘엔 천연 성분이나 비타민 E가 함유된 보습력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와 있다. 갈라지고 피까지 날 정도라면 꿀로 입술 팩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꿀에 들어 있는 비타민 B와 당분이 입술에 영양을 공급하고, 살균 기능을 한다. 꿀을 입술에 바르고 랩을 씌운 뒤 10~20분이 지나면 떼어낸다.

점막이 마르는 코·인후건조증
외부의 공기는 코와 인두·후두를 거쳐 폐로 들어간다. 이들 부위의 점막은 공기의 오염물질을 걸러주는 일종의 필터다. 점막에는 끈끈한 점액층이 존재해 먼지를 잡아줄 뿐만 아니라 염분·핵백혈구·라이소자임·항바이러스 물질이 들어 있어 세균을 잡아낸다.

따라서 겨울철 인두·후두를 촉촉하게 하는 것은 감기나 인두·후두염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수칙이다.

이 부위를 촉촉하게 유지하려면 물을 자주 마시고, 실내습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인두·후두를 괴롭히는 것은 담배연기와 같은 독성 화학물질. 실내 온도는 섭씨 20~25도, 습도는 50~60%를 유지토록 한다.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여승근 교수는 “실내공기가 건조하면 코와 호흡기의 점막이 부어올라 바이러스 침입이 쉬워진다”며 “실내 식물을 키우는 등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물은 광합성과 호흡·수분대사를 통해 유해물질을 흡수하고 실내 습도를 조절해 준다. 코가 건조할 때는 생리식염수를 코에 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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