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의변화바람] 재북화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장사에 밝기로 정평이 나있는 화교 (華僑) 들이 북한 민간경제의 '큰손' 으로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신분을 십분 활용, 북한 사회에서 알짜 장사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귀순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화교는 돈많은 '신흥귀족' 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의 시선과 대접도 크게 달라졌다.

북한거주 화교는 5천여명. 신의주를 비롯한 국경지대와 중국영사관이 있는 평양.청진 등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귀순자들의 눈에 비친 이들의 이미지는 한결같다.

'굉장히 잘산다' 는 것이다.

북송교포였던 김초미 (51.여) 씨는 "화교들의 생활은 완전 자본주의다.

넓다란 집에 없는 게 없다.

씀씀이가 일반주민과 비교가 안된다" 고 전했다.

金씨는 "일본 시댁에서 보내온 자가용을 좀 타다가 화교에게 팔았다" 고 했다.

2천여대에 불과한 북한의 자가용 소지자는 대부분 북송동포와 화교들이다.

화교들은 중국에서 식량.생필품을 들여와 손쉽게 돈을 번다.

외화벌이.사채놀이도 하고 북한 골동품을 중국.일본 등지로 빼돌리기도 한다.

중국을 드나들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황해북도 청단군에서 보위원을 지낸 신명철 (37) 씨는 "중국 친척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무엇이든 가져오기만 하면 돈이 되기 때문에 싸구려 물품이나 술.화장품.핸드백을 비롯한 사치품을 닥치는 대로 가져온다" 고 전했다.

신씨가 전하는 화교들의 중국방문 실상. "중국친척 방문은 1인당 3년에 한차례로 억제되고 있다.

체류기간은 20일이고 현지에서 2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중국 방문시에 부부동반은 피한다.

가급적 방문회수를 늘려 장사할 물건을 많이 가지고 오기 위해서다.

" 중국상품이 북한에 들어가면 값이 크게 뛴다.

"북한의 화교가 옌지 (延吉) 서 (西) 시장에 전화를 걸어 과자를 대량 주문하는데 값은 한차에 1~2만원 정도다.

국경경비대를 매수해 놓고 이를 차떼기로 반입, 20~30배 값으로 판다.

" 김초미씨는 "화교집은 백화점" 이라고 말한다.

집에 가게를 꾸려놓고 손님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청진출신 유송일 (46) 씨는 "화교가 장마당에서 물건 파는 일은 드물다" 고 전했다.

가격을 싸게 붙이면 되거리 장사꾼 등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기 때문이다.

신명철씨의 증언. "89년 평양축전 전에 북한당국이 주민들로부터 도자기와 귀금속등 골동품을 사들였는데 이 무렵 무덤 도굴사건이 급증하자 수집을 중단했다.

갑자기 골동품 판로가 끊기면서 중국이 새 판로로 등장했다.

화교들이 중개인으로 나서 신의주.혜산 등지에서 골동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던 화교들은 92년 화폐교환 (1:1 교환) 의 최대 피해자였다.

몇만원씩,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만원도 편법으로 교환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돈을 가진 화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화교들은 화폐교환 이후 달러.엔 등 외화나 금붙이를 사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교들은 떡고물을 노리는 보위부원.안전원들이나 도둑.강도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신명철씨가 전하는 화교.보위부.부랑아들의 공생관계. "보위부원들은 관할구역에 똘마니 하나씩 데리고 있다.

똘마니는 불량끼가 있거나 교화소에 갔다온 부랑자들로 화교물건 거래의 중개 역할을 담당한다.

화교가 중국친척 방문을 위해 여권을 신청하면 보위부원은 이를 똘마니에게 넌지시 알린다.

똘마니는 화교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며 인심도 쓰고 술도 함께 마신다.

그 과정에서 중국을 다녀오거든 물건을 통채로 넘기라고 암시한다.

결국 외상으로 물건을 인수해 곳곳에 뿌리고 돈을 거둬 일부를 챙기고 화교집에 건네준다.

화교로서도 많은 물건을 팔려면 보위원.안전원을 따로 챙겨야 하고 위험도 많아 이런 장사가 속 편하다.

" 화교들이 신흥부자로 등장하면서 빈부격차의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북한당국은 이를 눈감고 있다.

화교의 상업활동으로 인해 국경지대의 생필품 부족현상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