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금발의 바네사 메이' 린다 브라바 탄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섹스 어필의 여성연주자를 내세운 크로스오버. 클래식 음악의 죽음을 자초하는 지름길인가, 아니면 클래식의 몰락을 저지하는 마지막 보루인가.

지금 유럽음악계는 '금발의 바네사 메이' 가 출현했다고 온통 떠들썩하다.

싱가포르 태생의 동양계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 (21)가 머리 염색을 한게 아니라, 섹시 스타 파멜라 앤더슨 리를 꼭 빼닮은 핀란드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수영복과 가죽재킷 차림으로 나타난 것. 이름 린다 램페이니어스 (예명 린다 브라바) , 나이 27세, 학력 시벨리우스 음악원 졸업, 경력 시벨리우스 음악원 오케스트라 수석, 핀란드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 현재는 핀란드 헬싱키 시의원. 적어도 외모에선 지난 4년간 1천만장 이상의 경이적인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바네사 메이가 위협을 느낄 정도다.

달리기.복싱.스쿠버 다이빙 등 만능 스포츠맨에다 취미는 스포츠카 운전이며 아버지는 핀란드의 유명한 TV탤런트다.

바네사 메이가 물에 젖은 티셔츠 차림의 사진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린다는 한술 더 뜬다.

영국 채널4의 '유로트래시' 프로 등 유럽의 TV방송에 출연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마돈나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린다가 갑자기 스타로 부상하게 된 것은 95년 11월 핀란드에서 발행되는 스웨덴어 신문 1면에 사진이 실린 뒤부터. 지난해말 핀란드 필하모닉 공연실황 중계방송에서 TV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협연자로 나선 린다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날밤 린다의 집에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이튿날 음반사에서 계약서를 들고 온 것은 당연한 일. 핀란드에서 발매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첫 음반 '위반자 (Violator)' 에는 바네사 메이의 히트곡인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가 더 빠른 템포로 담겨 있다.

나머지는 온통 테크노 팝이다.

최근 할리우드로 활동 무대를 옮긴 린다는 수영복 패션 광고모델로 출연한데 이어 로스앤젤레스의 카오스 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린다 브라바라는 예명의 첫 음반을 올해말 출시할 예정이다.

이 음반이 성공한다면 메이저 음반사에 진출하는 것은 시간문제. 음악계에서는 바네사 메이가 '클래식 앨범' 을 발표하고 나이즐 케네디가 클래식무대 복귀를 선언하는 마당에 팝 클래식의 극단을 추구하는 그녀의 '행각' 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젊은 세대를 클래식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지, 아니면 치아를 썩게 해 정작 섭취해야할 음식을 못먹게 하고야마는 '사탕' 에 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