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성공해 가난한 아이들 돕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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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노래로 성공해 오프라 윈프리처럼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올해 시즌 프리마돈나(여성 주역)로 발탁된 소프라노 김지현씨.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약칭 메트) 오페라의 올해 시즌 프리마돈나(여성 주역)로 발탁된 소프라노 김지현(33·미국명 캐슬린 김)씨의 꿈이다. 김씨는 12월 초부터 공연되는 자크 오펜바흐 작 ‘호프만 이야기’에서 호프만이 사랑하는 인형 올림피아 역을 맡게 됐다고 10일(현지시간) 메트 오페라가 발표했다. 김씨는 홍혜경(1984년)·조수미(89년)·신영옥(90년)에 이어 메트 오페라의 네 번째 한인 프리마돈나가 된다. 메트 오페라에서 한인 프리마돈나가 탄생한 것은 신씨 이후 19년 만이다. 앞서 프리마돈나를 맡았던 세 명은 현재 모두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소프라노’로 자리 잡고 있다. 김지현이라는 새로운 스타 소프라노의 탄생을 예감하는 이유다.

김씨는 “이번 작품에선 올 토니상 수상자인 바트 셰가 총감독을 맡는 등 전 세계적으로 쟁쟁한 인물들이 출연진과 제작자로 참여해 기쁨보다 떨리는 마음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주목받는 만큼 부담도 큰 모양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고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맨해튼 음대와 동 대학원을 마쳤다. 그 뒤 시카고 리릭오페라의 라이언 오페라센터에서 기량을 닦았다. 2006년엔 ‘중국의 닉슨’에서 마오쩌둥의 부인역으로 출연해 갈채를 받았다. 메트 오페라에 입성한 것은 2007년. 지난 2년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나, 드보르자크의 ‘루살카’에서 제1의 요정으로 등장했다. ‘피가로의 결혼’과 ‘가면무도회’에서 각각 바바리나와 오스카 역을 맡았다. 지난해 11월에는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탈출’ 무대에 섰다.

유럽 데뷔도 예정돼 있다. 올해 5월 스페인의 빌바오 오페라에서 공연하는 ‘연대의 딸’에도 참여한다. 2006년 설리번 재단상과 레오 로저스 스칼라십 등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경력은 프리마돈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김씨는 “과거엔 오페라 소프라노라면 몸집이 있는 여가수를 연상할 정도로 노래만 잘하면 됐지만 요즘엔 용모도 따지는 분위기라 서양 기준으로는 외모가 이국적인 동양계가 프리마돈나를 맡기 더욱 어려워졌다” 고 설명했다. 언어 문제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그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더욱 노력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타고난 음색도 큰 몫을 했다. 그는 “목소리가 맑고 선명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메트 오페라 극장에서도 구석구석까지 잘 뻗어나간다는 평을 듣는다”라고 했다. 2007년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바리나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자 현지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다. 뉴욕 타임스는 “바바리나 역을 달콤하게 연기해 냈다”라고 썼으며 뉴욕 포스트는 “우리가 원하는 활기와 신선함을 보여줬다”라고 칭찬했다.

김씨는 그간 많은 배역을 소화해 냈지만 아직도 해보고 싶은 역이 있다.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대표작 ‘라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주인공 루치아 역을 맡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 한국의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고국에서 노래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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