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국내 유일 사이버스타 '주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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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텔레비전? 재밌다.

하지만 귀찮다.

월요일 밤엔 꼭 'X - 파일' 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만 거래처 사람들과 급작스런 회식 땜에 놓치고 말았다.

예약녹화도 깜빡 잊었다.

정작 일요일 낮에는 볼만한 게 없다.

왜 재방송은 주말연속극만 하는 거야. 차라리 그 시간에 'X - 파일' 을 한번 더 보여주지. (20대 회사원 김모) 라디오? 늘 끼고 산다.

하지만 디제이들의 선곡 솜씨가 항상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록이면 록, 발라드면 발라드, 원하는 장르만 틀어주는 프로는 없나. 차라리 CD나 테이프를 들으라고? 내 취향, 내 입맛에 딱 맞는 '맞춤방송' 이 없냐는 거다.

(10대 재수생 박모) 맞춤방송? 뭐 아주 턱없는 꿈은 아니다.

컴퓨터를 켜 보라. 그리고 인터넷을 헤집고 '방송국' 을 찾아보라. 인터넷? 말만 들어도 머리에 쥐가 난다고? 컴퓨터도 잘 모르는데, 영어는 더더구나 잘 모른다…. 그럼 여길 한 번 찾아가 보라. 주소가 http:/www.netalk.co.kr/ntrs.일단 찾아가면 당신을 맞이하는 것은 한글로 제공되는 인터넷 음악방송 'NT 스테이션' 의 디스크 자키 '주키' 다.

주키. 청바지에 농구화, 까만 조끼에 빨간 넥타이, 무스를 발라 짧게 세운 머리에 까만 선글라스. 신장은 170 좀 안되고 체중은 60 좀 안되는 20대 초반의 한국남자. 좋아하는 영화는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10대들의 고민을 정면으로 다루는 사설 (불법? ) 단파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는 고교생으로 나오는 미국영화 '볼륨을 높여라' . 원래 이름은 동전 넣으면 음악이 나오는 기계 '주크박스' 의 '주크' 와 '디스크 자키' 의 '자키' 를 합성한 '주크 자키' 지만 다들 그냥 주키라고 부른다.

주키는 지난 96년4월 NT 스테이션과 함께 탄생한 국내 유일의 사이버 캐릭터, 즉 가상공간에만 존재하는 '딴따라' 다.

당신 : 인터넷 방송이란 게 뭔가? 주키 : 시공간을 뛰어넘는 개인화된 매체. 당신 : 시공간을 뛰어넘어? 방송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나? 또 정규프로그램 편성표는? 주키 : 그런 거 없다.

24시간 접속가능. 원하는 장르만을 골라 당신 취향대로 연속해서 들을 수 있다.

마치 도서관같다.

잔뜩 쌓아놓고 그 사람 입맛에 맞는 걸 계속 내보내 준다.

당신 : 여느 인터넷 사이트도 동화상과 소리를 제공하지 않나? 그런 사이트들과 엔티스테이션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나? 주키 : 경계 같은 건 없다.

차이는 기술에서 온다.

인터넷 관련기술들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작년 그래미상 시상식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될 때만 해도 동화상은 없이 소리만 전달됐다.

근데 이젠 동화상 생중계도 가능하다.

우리도 지난번에 가수 강산에씨를 초청, 인터뷰와 노래를 곁들인 생방송을 했었다.

동화상은 아니었지만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공중파 방송처럼 시간제한도 없고, 접속중인 사람들끼리 채팅도 가능하다.

가까운 미래에는 수천, 수만의 이런 개인 방송국이 생길 것이다. 당신 : 궁극적으로 뭘 하자는 건가? 주키 : 지금 인터넷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단순히 사이트를 제작하는 컴퓨터기술뿐 아니라 그 사이트를 채울 흥미있는 내용물을 만드는 창조성이 한국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늘어놓는 주키. 하지만 아직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없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폴짝폴짝 뛰는 것외엔 움직임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상공간을 통해 하루 평균 2백명씩 주키를 만나러온다.

기다려 주시라. 해박한 컴퓨터 지식과 인터넷에 대한 나름의 철학 외에도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를 마다않는 주키의 '끼' 가 십분 발휘되는 것은 기술과 돈과 시간의 문제일 따름이니까. 참고로 주키와의 인터뷰는 그를 개발한 네토크사 (社) 김휘기 (25) 과장의 입을 빌려 진행됐음을, 그리고 NT 스테이션은 넷스케이프가 아니라 익스플로러를 사용해야 함을 밝혀둔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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