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속의문화유산]21. 口傳신화.설화.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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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다.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에 시선을 돌린다.

도자기.그림등 유형문화재나 탈춤.판소리등 무형문화재 구분 없이 일단 모양을 갖춘 것만을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잘못된 일이다.

우리 문화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소중한 '유산' 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유형문화재가 반지.목걸이등 보석을 다듬은 장신구라면 나는 그 원석 (原石) 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

우리가 무지한 탓에 까맣게 잊어버린 것들의 가치를 들춰내겠다는 말이다.

즉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보다는 내가 그동안 관심을 갖고 보존.발전시켰으면 하는 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이것들에 '지적 문화재' 라는 별칭을 붙이고 싶다.

첫째는 구전신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화 하면 단군신화나 아니면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 신화는 건국신화다.

나라를 어떻게 세웠는가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문헌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다분히 인간적인 행적만을 그려 놓아서 공상적 요소며 낭만적 흥취며 신비감을 자아내는 상징성이 희박하다.

또한 꾸밈새에는 고저의 격조나 광협의 진폭이 부족하고, 서술 전개도 인간적 논리를 넘는 비합리성을 구사하지 못하는 평면적인 것이어서 신화라기보다는 실제 인물의 생애 기록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신화에도 나라를 세우는 그런 스케일이 좁은 얘기가 아닌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스케일이 방대한 질문을 하는 그런 신화는 없는가.

그리고 물.불.인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질문을 하는 공상과 낭만이 깃든 웅장하면서도 인간의 합리성을 초탈하고 철학적으로 초인간적 존재자의 세계의 시정 (詩情) 을 불러 일으키도록 다양하게 꾸며진 그러한 신화는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신화들은 무당의 노래 속에서 구전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학자들이 문헌에 실린 신화만 주요한 유산으로 간주하고 연구대상으로 보고, 무당의 노래 속에 구전되어 오는 신화는 우리 문화의 '가치' 로 인정하지 않은 편협한 사고 때문에 잊혀져 왔던 것이다.

대표적인 신화 둘만 간단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①천지개벽신화 : 하늘과 땅이 혼합되어 있다가 시루떡 갈피가 있듯이 하늘과 땅 사이가 갈라지게 되었는데 하늘에서 정이슬이 내리고 땅에서 흑이슬이 솟아 나오고…압록산의 황토를 모아서 사람을 만드니 사람이 흙으로 된 까닭에 땅에서 살고 죽어서는 땅으로 돌아간다…또 만물이 솟아났는데 새가 말을 하고 나무가 걸어다니고 소머리에는 갈기가 돋고 말머리에는 뿔이 돋고 닭의 머리에는 귀가 달리고 개머리에는 벼슬이 돋아 있었다…. ②서귀포 당신 이야기 : 제주땅 설매국의 바람운은 산 넘고 바다 건너 천리밖에 비나라 비오천리 홍토나라 홍토천리에 고산국이라는 미인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청구름을 둘러 타고 만나러 간다…. 참으로 환상의 세계다.

이 세상이 생긴 근본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인간과 새.나무.동물들이 상상을 초월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서귀포의 당신 바람운, 고산국 지산국과의 사랑, 배신, 간통, 복수 그리고 용서등 인간의 근본적 주제들이 웅장한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런 무가 (巫歌) 속의 신들을 일찍 발견하고 사랑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우리는 잊어버린 아니 잊혀진 우리의 신을 찾아 나서야 하겠다.

신들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다.

불가능이 없는 환상의 세계다.

이 신들의 세계를 우리 학생들에 알려서 상상의 날개를 펴도록 교육해야 한다.

마음껏 상상하는 마음에서 창조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 신들이 문학으로, 미술로, 연극으로, 그리고 과학으로 만날 때 우리 문화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번째는 구전설화다.

나는 70여년전부터 옛날 얘기를 모아왔다.

이야기는 우리 민족 삶의 집대성이다.

얘기 속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철학, 알아야 할 지식, 그리고 느껴야 할 희로애락이, 즉 한국인의 삶이 축적돼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고 서민의 애환을 읽을 수 있고 적나라한 생존전략을 알 수 있다.

신화가 상상의 세계를 환상과 낭만으로 그린다면 설화는 인간의 현실 생활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과 상좌' 라는 얘기에는 우리 민족이 현실에 집착하는 심성을 잘 나타낸다.

'샌님과 막둥이' 라는 얘기에는 샌님을 속여서 부자가 된 막둥이가 망하고 샌님이 동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것은 성인.군자.철인들이 가르쳐 주는 권선징악적 설교와는 다른 현실의 논리를 보여 준다.

'감기가 걸린 이유는?' 은 성에 호기심이 강한 10대 소년에게서 80년전에 채록한 '야한' 이야기지만 그 기발한 해석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작이다.

이미 영어로 번역돼 많은 외국인들로부터 찬탄을 받고 있다.

'기생 갈이' 는 민중을 다스리는데 중요하고도 긴급한 것이 많은데 기생제도를 제도화하여 정색유착 (현대의 정경유착의 전신? ) 을 한 지배층의 비뚤어진 사고와 정치철학의 빈곤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끝없는 민담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세번째는 구전민요다.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말이라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노래다.

민요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노래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라는 민족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겨례의 노래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잃게 됐다.

일제가 말을 뺏으려 했어도 해방과 더불어 우리는 말을 되찾았다.

반면 해방 이후에도 우리의 노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서 서양 노래와 악기만 가르쳤지 우리 노래와 악기는 외면했기 때문이다.

마치 국어를 가르치지 않고 영어만 가르친 꼴과 같다.

또한 서구화.산업화 속에 현재 우리 민요는 고사 (枯死) 직전에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의 노래를 배우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젊은 세대는 우리의 노래를 부르지도 들을 줄도 모르게 됐다.

우리 민요를 즐겼던 노년세대도 노래를 부를 기회가 적어짐에 따라 점점 노래를 잊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소리 찾기, 우리 민요 살리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 소리의 세계화는 커녕 사라질 위기에 있다.

지난 95년 광복 50돌 행사로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대향연' 공연이 성대하게 치러져 우리를 흐뭇하게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모두 서양 음악을 노래했다.

우리의 노래는 어디 갔는가.

앞으로 민요교육을 열심히 시켜 광복 1백돌 기념에는 '세계인이 부른 한국음악의 대향연' 을 열어야 할 것이다.

임석재<민속학자.前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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