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한국은행 특별융자 - 찬성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잇따른 대기업의 좌초가 제일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을 멍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금융계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의 특융 (特融) 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은특융이 가져올 물가불안등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아 정부도 주춤거리고 있다.

특융을 둘러싼 찬반양론을 소개해 본다.

편집자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은 글자 그대로 모든 수단을 다해도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될 때 행사돼야 한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은 특융문제의 핵심은 한보사태이후 악화돼 온 금융시장의 불안이 이런 상황에 해당되느냐는 인식의 문제다.

이미 연쇄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부도유예협약이라는 긴급장치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기아 (起亞) 사태로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시중에는 부도유예협약대상 리스트까지 나돌아 해당 기업은 물론 금융시장 전체가 불안해 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종용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대출창구는 얼어붙어 신용공황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여건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뉴욕소재 한 작은 한국계 은행의 현지법인에 연방예금보험공사와 뉴욕주 은행감독국에서 나온 검사원 6~7명이 한달째 진을 치고 전표 하나 하나까지 뒤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미국에서는 한국계 은행이 신청한 지점이나 현지법인의 인가가 무기한 중지돼 있다.

얼마전 미 연방은행의 직원들이 한국의 금융시장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한데 이어 기아사태이후 뉴욕주 은행감독당국에서도 모은행의 경영상태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영국의 중앙은행도 국내 모은행에 대해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기준이 아닌 BIS기준의 자료를 요청하고, 경영상태의 상당한 개선이 없는 한 런던소재 지점의 영업에 제한을 가할 것을 시사했다 한다.

일부 은행은 신용등급이 떨어져 한 단계만 더 하락하면 투기등급으로 분류돼 사실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됐고, 여타은행들도 국가위험 (country risk) 이 적용돼 개별은행의 신용도에는 관계없이 높은 코리안 프리미엄을 지불하고도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국에서 시작한 동남아의 통화및 금융시장불안이 홍콩에까지 파급돼 다음 차례가 한국이 아니냐는 불안도 있다.

특정은행에 대한 중앙은행의 특융이 세계무역기구 (WTO) 의 보조금 금지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은 특융은 특정기업이나 특정산업에 대한 지원 차원이 아닌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한 긴급장치 (safe guard) 로 이는 WTO 협정의 부속서에도 붙어 있다.

미국도 84년 대형은행의 하나인 콘티넨털 일리노이 은행의 도산을 막기 위해 연방은행과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대규모의 특별지원을 한 바 있다.

이제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의 가능한한 시장주의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정치권을 위시한 각계 각층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시장개입을 자제해 온 정부의 의지는 이해가 가며 또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임기말의 정권아래서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보신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냉철한 상황인식하의 책임있는 행정을 국민은 더욱 평가할 것이다.

한은 특융은 특정기업에 대한 지원과 연계돼서는 안되며 은행공황을 예방하기 위해 은행에 대한 최소한의 수준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원받는 은행은 뼈를 깎는 아픔의 자구 (自救) 노력을 이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미국 최대은행의 하나인 아메리카은행은 회생을 위해 본점 건물까지 매각한 적이 있다.

[강병호 한양대 경제학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