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터넷과 마약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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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니세프 (UN아동구호기금) 친선대사로 아프리카등 오지를 다니며 어린이들의 참혹상을 볼 때면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괴롭지만 그래도 유니세프보고를 들으며 세계 전체적으로 아동의 복지가 매년 조금씩이나마 향상된다니 그것으로 위안을 받는다.

" 이것은 이미 작고한 배우 오드리 헵번이 언젠가 나에게 들려준 말이다.

나는 지난 몇년동안 UN마약통제기구 (UNDCP) 의 친선대사로 일하며 정반대의 경험을 해왔다.

마약투쟁에서는 모범국인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 문제에 별로 신경을 못 쓰다가도 가끔 빈 본부에서 날아오는 UNDCP의 조사자료에 나타나는 세계적으로 점점 심각해지는 마약중독 문제에 허탈감마저 느끼게 된다.

지난 6월 25일 UNDCP가 처음으로 발간한 세계 마약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2.5%나 되는 무려 1억4천만여명이 대마초 혹은 그와 비슷한 해시시를 사용한다고 한다.

또 1천3백만명이 코카인을 쓰며, 8백만명은 아편, 3천만명이 한국에서도 자주 적발되는 암페타민과 같은 불법물질을 복용한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는 마치 우리 인류의 몸속에 암세포가 퍼져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마약은 전 세계적으로 가정의 파괴, 폭력의 확산등 각종 범죄를 야기하며 방방곡곡에서 사회.보건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마약의 불법제조.유통 및 소비자가 매년 세계교역량의 8%나 되는 4조달러에 이르러 수많은 범죄단체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정부관리와 경찰간부들을 위협하고, 매수 또는 살해하며 심지어는 정부 자체를 뒤흔들어놓기도 한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제일 우려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마약문제가 개선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이제는 인테넷까지 마약보급에 동원돼 한국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테넷은 이미 우리 가정의 안방에 들어와 있다.

거의 집집마다 보급되어 있는 컴퓨터를 통해 마약의 제조법, 이것을 구하는 방법과 가격은 물론, 마약이나 환각제를 복용한 후 무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상태를 미화하는 글들이 범람하고 있다.

UNDCP는 인테넷을 통한 마약중독이 한국과 같이 컴퓨터가 잘 보급된 나라에서 확산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문제를 다루기 위해 UNDCP는 이미 지난해 11월 상하이 (上海)에서 전문가회의를 소집하고 각국에 경고성 지침을 내보냈다.

많은 제안중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부모들과 학교교사 등에게 해당되는 부분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예방이 최선의 치료제라는 전제하에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 어린이들을 지도해야 한다.

공포감 또는 억압으로가 아니고 대화를 통해 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은 누구나 호기심이 있고 또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

무조건 마약의 영향을 과장하면서 질책하면 이미 인테넷을 통해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는 미성년들이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또 중요한 것은 부모들도 더 늦기전에 컴퓨터를 익혀 아이들과 좀더 현실적인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마약통제에서는 모범국이라고 하나 근래의 추세를 보면 그렇게 방심할 수만은 없다.

예를 들어 95년중 한국에서 적발, 압수된 대마초가 1백65㎏나 되었다.

94년에 비해 거의 50㎏이 는 셈이다.

물론 세계추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UNDCP관리들은 이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며, 대마초나 합성약품이 더 무서운 마약, 아편.코카인과 LSD로 가는 시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은 효과적 교육과 철저한 단속으로 마약의 침투를 막아야 한다.

국경이 없는 이 싸움을 우리는 모두 정성껏 도와야 한다.

인터넷과 그밖의 여러 경로를 뚫고 들어오는 소위 "마약의 문화" 가 곧 죽음의 문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이 자리잡을 수 없게 계속적인 예방책을 펴야 한다.

[정명화 첼리스트.유엔마약퇴치 친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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