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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와 방북한 김석한 재미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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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 고위관리들은 공식접촉때는 물론 공항 배웅자리에서도 1백만 식량을 빨리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 재미 (在美) 변호사 김석한 (金碩漢.48) 씨.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대사, 샘 넌 전 미상원의원과 함께 20일부터 북한을 방문한 뒤 서울에 들른 그는 북한 식량난이 매우 절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들의 방북은 휴전선 총격전 직후 이뤄진데다 8월5일의 4자예비회담을 앞둔 시점에 고위관리들과 두루 접촉했다는 점에서 국내외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본사 김영희 (金永熙) 국제문제 대기자는 23일 金씨를 단독으로 만나 이번 접촉결과를 비롯, 북한이 처한 전반적인 상황을 들어보았다.

金씨는 "북한이 식량제공을 4자회담 참석의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지는 않지만 4자회담 과정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는 상당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 말했다.

- 이번 방북은 순수한 민간차원입니까, 아니면 미국정부와의 사전교감이 있었던 것입니까.

"구체적 언급은 곤란하나 북한의 초청을 받고 방북전에 미 고위당국자로부터 사전 브리핑을 받았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 金변호사는 어떤 자격으로 방북한 것입니까.

"저는 레이니 전대사및 샘 넌 전상원의원과 동등한 대표 자격이었습니다.

수행원이 아니라는 얘기죠. 제가 선발된 것은 북한당국자들의 어투나 발언의 뉘앙스를 미국인보다 좀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 재미동포라고 다른 대우를 받지는 않았나요.

"레이니 전대사등 미국대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정중하고 합당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외국인에게 과잉대접을 해주지 않으려는 그들의 자세가 인상적입디다. "

- 북한에 전달한 메시지는 어떤 내용입니까.

"우선 북한이 4자회담이나 남북간 긴장완화.신뢰구축등에 성의를 보여야 식량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밖에 유사시 미국은 전적으로 한국을 지원한다는 것과 북한은 농업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해야한다는 점도 전했습니다. "

- 미국은 유사시 한국을 지원한다는 메시지에 대한 북한당국자의 반응은요. "민간인 당국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

- 남북간 긴장완화등에 대한 북한당국자의 인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샘 넌 전의원이 '남북한 군대와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이산가족 소재파악도 허용한다' 는 94년 카터 전대통령과 김일성과의 대화내용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도 일단 '그런 원칙에는 동감한다' 고는 했습니다. "

- 경제개혁에 대한 반응은요.

"이 문제를 놓고 개념상의 차이가 있어 한참 논란을 벌였습니다.

미 대표단이 '북한은 구조적 개혁을 해야한다' 고 했더니 즉각 '무슨 소리냐' 고 하더군요. 자신들의 체제는 끄떡없는데 무엇을 고치라는 거냐고 합디다.

'경제의 구조개혁' 을 '체제의 개혁' 으로 해석한 거죠. 그래서 '농업을 비롯한 경제개혁' 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은 계속 식량지원을 할 수 없다' 고 했더니 '다소 조정은 하고 있다' 고 대답하더군요. 체제고수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 북한과 미국간 군사채널 확보문제에 대해선 어떤 얘기가 오갔습니까. "이번 접촉에서 명시적으로 '북.미 군사채널' 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북한과 우리간의 의사소통 창구가 필요하다' 는 얘기는 많이 나왔죠. 그런데 이 '우리' 에는 반드시 한국이 포함된다는 점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고 주지시켰습니다. "

- 그렇다면 북한측이 짜증을 부렸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북측당국자들은 처음엔 '실권도 없는 남한이 왜 끼어들려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는 식으로 나왔으나 샘 넌 전의원이 '한국을 배제한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있을 수 없다' 고 반론을 제기하니까 '알았다' 고는 하더군요. " - 전쟁운운하는 발언은 나왔습니까.

"그런 발언은 없었으나 군인들의 발언권이 매우 강하다는 인상은 분명히 받았습니다. "

- 평양체류중 귀빈초대소에 묵은 것으로 아는데 시설이 어떻습니까. "귀빈초대소라고 하나 하루에 물이 2~3차례 끊기고 전기도 가끔 나가는등 빈약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 음식은요. "서울의 일류호텔 수준은 아니나 쇠고기.오리고기등도 나오는등 괜찮은 수준이었습니다.

쌀밥이긴 하나 보리등 잡곡을 약간 넣었더군요. "

- 평양시나 시민들에 대한 첫인상은 무엇입니까.

"인구가 2백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간혹 걸어다니는 시민들의 얼굴이나 차림새를 보면 고생하고 있다는 흔적이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식당을 가도,가게에 가도 물건도 사람도 거의 없더군요. "

- 숙소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습니까.

"조깅을 하러 나가려고 했더니 안내원이 안에 있으라고 하더군요. "

정리 =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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