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인도다!] 6. 만리장성도 넘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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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민가가 많은 인도지만 ‘경제수도’로 불리는 뭄바이의 해안도로 인근 지역엔 높은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김준술 기자]

인도와 중국.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지금 당장은 누가 봐도 중국의 승리다.

경제력으론 10년, 수출규모로는 15년가량 중국이 앞섰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그러나 10년 후, 20년 후라면 이야기는 결코 간단치 않아진다. 인도 쪽 승리에 거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취재 중에 만난 인도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묘하게도 중국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경쟁심리랄까, 경계심리라 할까. 아무튼 중국 이야기만 나오면 인도인들에게선 노골적인 감정들이 묻어 나왔다.

"중국이 최근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심한 불균형이 치명적 약점이다."(타임스 오브 인디아 신문의 국제담당 국장), "황금시대를 구가하지만 거품이 문제다."(아쇽 쿠마르 LG전자 인사부장) 심지어 자스완트 싱 재무장관은 "인도가 세계경제의 파워로 부상하는 건 '국가적 운명'"이라고 호언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호랑이(중국)'와 '코끼리(인도)'의 싸움은 이제 세계적 관심사다. 여러 면에서 재미나는 대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관전 포인트는 국가 체제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아래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이며, 개발독재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나라. 반면에 인도는 지방분권 체제이고 중국보다 훨씬 덜 사회주의적이며, 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하는 나라다.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는 걸로 따지면 중국 정부의 추진력을 인도는 흉내도 못 낸다. 바로 그런 차이 때문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에 중국이 거침없는 진군을 거듭할 수 있었다. 한번 한다 하면 와장창 해치워온 게 중국이다. 반면에 인도는 뭘 하나 해도 힘들다.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거쳐야 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과속.과열에서 비롯된 중국의 부작용들이 심각해지자 인도는 "그것 봐라.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자기들의 민주주의 체제를 뽐내고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가 과연 어떤지 몰라도 인도인들의 이 같은 자부심엔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예상을 뒤엎고 야당이 여당을 이겨버린 최근의 총선거가 좋은 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극히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중국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개방정책의 기조는 변함이 없으며, 새 총리도 과거에 개방을 주도했던 인물이 됐으니 말이다. 인도의 장래를 중국보다 밝게 보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은 느려터져도 급히 먹다 배탈나는 중국을 결국은 추월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인도의 경쟁력을 더 높이 평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영어다. 인도인들이 중국인들보다 평균적으로 영어를 훨씬 잘한다는 점은 시비의 여지가 없다. 소프트웨어가 앞선 것도 따지고 보면 영어 덕분이 크다. 중국도 최근 소프트웨어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으나 영어 때문에라도 인도의 상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중국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재래산업 위주로 힘을 길러온 반면, 최근의 인도는 정보기술(IT)을 축으로 한 미래의 신(新)서비스 산업을 성장의 엔진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또 인도는 서비스업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다. IT를 지렛대로 종자돈을 모으고, 돈 버는 법을 배워 제조.관광.유통업 등도 얼마든지 키우겠다는 것이다. 아룬 자이틀리 산업부 장관은 "7%대인 제조업 성장률을 앞으로 몇 년간 14%대로 끌어 올리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인도 쪽에 치우친 것이다. 중국의 발전은 현재진행형의 역동성인 데 반해 인도에 대한 평가는 미래형 잠재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리장성'을 뛰어넘으려면 극복해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외국기업들이 인도보다 중국에 들어가는 게 훨씬 쉽다. 국제통화기금(IMF) 데이비드 버튼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은 "인도는 중국만큼 시장이 개방되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중국의 10%에도 못미친다는 지적이다.

사실 인도가 민주주의를 하든 사회주의를 하든, 외국 투자자 입장에선 별로 중요치 않다. 그런 것보다 투자결정에 대해 정부가 신속하게 책임져 주고, 돈벌이하는 데 불안하지 않도록 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도 현재로선 중국이 인도를 앞선다.

인도.중국을 꼭 대결과 경쟁으로만 보는 건 근시안적이다. 인도의 부상과 중국의 견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상호보완 관계 등이 수시로 교차 반복되어갈 게 뻔하다. 인도 동북부 히말라야 산자락의 나투라. 인도 시킴주(州)와 중국 티베트를 잇는 중요한 교역관문이지만 60년대초 국경분쟁 이후 폐쇄된 곳이다. 그러나 최근 10년 만에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이를 부활시키기로 전격 합의했다. 인도가 중국을 추월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인도가 중국과 함께 부상하는 현실 자체가 세계경제의 새 틀을 짜게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뉴델리.뭄바이.방갈로르.첸나이=이장규 경제전문대기자,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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