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의문화유산>경주 괘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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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천년 역사의 도시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중의 하나가 도심 곳곳에 봉곳봉곳 솟은 고분이다.

저녁 어스름 대능원, 노동동.노서동 고분군, 서악동 고분군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느끼는 천년 시공간의 감회는 말로 다 풀어내기 힘들 정도다.

이런 고분군들이 주는 느낌과는 좀 다르지만 괘릉은 경주의 고분 중에 가장 기분좋은 곳이다.

우선 소나무숲이 능 주변을 조용히, 그러나 두텁게 둘러싸고 있어 청신하고 고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이 수시로 몰려드는 유적지도 아니어서 언제든지 차분히 능을 돌아볼 수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능원 안쪽으로 깊숙이 지름 23m.높이 6m 규모의 봉분이 있으며, 봉분의 아랫 부분엔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다.

십이지신상들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활달한 모습의 무신으로, 신라 십이지신상 가운데 우수하기로 손꼽히는 조각이다.

십이지신상을 둘러보다 자기도 모르게 제 띠와 같은 신상 앞에 멈춰 서는 것이야말로 인지상정이 아닐지. 호석 주위엔 수십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만들었으며, 봉분 바로 앞에는 커다란 안상을 새긴 석상을 놓았다.

이런 봉분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앞쪽으로 돌사자 두쌍과 문인석.무인석이 한쌍씩 좌우로 대칭해 서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돌사자 네마리와 무인석이다.

돌사자 네마리는 모두 앞발을 세우고 살짝 엉덩이를 내리고 앉은 자세로, 얼굴엔 무덤을 지키겠다는 비장한 각오는 사라지고 어느새 싱글벙글한 웃음만이 가득하다.

두 마리씩 좌우로 마주보고 있지만 고개만은 각기 동서남북으로 따로 돌려 사방을 지키게 한 배치법이 재치있고 절묘하다.

한편 문인석과 무인석은 매우 엄격한 표정인데, 특히 무인석은 눈이 깊숙하고 코가 우뚝하며 고수머리인 서역인의 모습이다.

복장 또한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돼 있어 당시 신라의 복장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서역인상으로 미뤄 당시 경주가 당나라 뿐만 아니라 서역과 활발히 문물을 교류했던 국제도시였음도 짐작할 수 있다.

본래 왕릉이 있기 전 이곳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원형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유해를 수면 위에 걸어 안장했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 (掛陵) 이라 불리며, 신라 제38대 원성왕 (재위785~798) 의 능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다.

▶가는 길 = 경주 불국사역 앞에서 외동.울산으로 난 7번 국도를 따라 2.9㎞ 가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왼쪽엔 괘릉으로 가는 마을 길이 보인다.

마을길을 따라 6백 가면 괘릉에 닿는다.

글 = 김효형 (문화유산답사회 총무) 사진 = 김성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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