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19년간 청소년문제 담당한 YMCA 李承庭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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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충격의 포르노 '빨간 머플러' .기성세대들은 여중생이 포르노에 등장했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

10대들의 성의식이 위험수준에 다다랐다며 큰 걱정들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10대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이라며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이다.

사회일각에서는 음란물이 판치는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이 사건은 벌써 예견된 일로 이제 현실로 나타난 것 뿐이란 견해까지 내놓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10대 성문화에 대한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보기 위해 19년동안 일선에서 청소년 문제를 담당해 온 서울YMCA 청소년사업부 이승정 (41.李承庭) 부장을 홍은희 (洪垠姬) 생활부장이 만나봤다.

- 최근 여중생 포르노 비디오 사건이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몰래 포르노물을 보던 이들이 이젠 직접 만들고 출연해 판매까지 할 정도로 발전 (? ) 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10대들의 성개방' 은 어디까지 와 있는 건가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노골적이죠. 지난해 서울보건대학원이 서울시내 13개교 3천여명의 남녀학생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남학생은 16.7%가 여학생은 5.4%가 성경험을 했다고 할 정도니까요. 이번 포르노 비디오에 대해 아이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한 것도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성문화로 볼 때는 대단한 일이 아니어서 그런거예요. 심지어 일부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선 낙태비용으로 쓰기 위해 '낙찰계' 를 들고 있다고도 해요.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 줄 모르니 서로 돕자' 라는 거죠. 어른들의 입장에선 엄청난 충격이죠.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10대들의 성의식에 대해 접근해가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숙제입니다.

" 청소년들은 충격 안받아 - 음란비디오나 잡지등 청소년 유해환경을 막기위한 사회운동에 매달려 오신 것만도 10년이 넘지요? 8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로 달라졌습니까. "그때보다 훨씬 나빠졌지요. 그 당시에는 포르노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설사 학생들이 구했더라도 친구들과 몰래 숨어서 보곤 했죠. 하지만 요즘은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포르노 비디오를 못 본 학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까요. 더우기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의 등장으로 양상도 달라졌죠. 심지어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인터넷에 들어가 음란사이트에 접속해 사이버 음란물을 즐길 정도입니다.

" -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교생의 95%이상이 포르노나 플레이보이등의 음란물을 접하고 있는 실정인데도 정작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을 것'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죠. 그래서 부모와 자녀간의 성에 대한 괴리는 더욱 커지는 거구요.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가정에서 성에 대한 지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성에 대한 지도를 하기 앞서 자신부터 성에 대한 공부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부모들조차 성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서 모든 것을 학교에게만 의지하려고 들죠. 성에 대한 지도는 가정과 학교가 함께 해야 하는 건데도 말이죠. 부모들이 올바른 성의식을 갖고 자녀들이 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런 다음에야 자녀지도가 가능하지 않겠어요. 룸싸롱에 가서 소위 '영계' 타령을 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자녀에게 성교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녀들을 보호대상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가정일에 참여하고 책임도 느끼게끔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을 보호대상으로만 삼아서는 결코 책임감과 판단력을 기를 수 없습니다.

성숙한 성의식이란 자신의 성행위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영계' 타령 아버지도 문제 - 제가 아는 분의 자녀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학교에서 아이들이 '플레이보이지' 를 돌려보다 '너도 봐라' 하며 줬는데 키득거리는 대신 '뭐가 재밌냐' 고 했다가 집단 따돌림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10대들은 또래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기인데 이런 현상이 주류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이미 아이들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종전 모범생주도에서 소위 문제아중심으로 바뀐 거죠.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는 아이보다는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아이가 더 영웅시되고 인기가 높아 학급 임원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은 최근 3년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정상적인 아이들이 견뎌낼 수 없을 정도예요. 한 예로 부모들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으려는 이유도 문제아들이 주류인 곳이 인문계에 비해 많다는 걱정에서죠. 아마 이런 현상은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한 풀기가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 - 근간의 조기유학 열풍도 그런 차원에서 납득이 되는 군요. 그렇다면 왜 아이들의 패러다임이 '문제아 지향적' 으로 바뀐 겁니까. "한마디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진 때문이지요. 군사정권시대에는 대사회적인 악이 군부독재로 돼 있었지만 문민시대가 열리면서 '악' 의 존재가 상실돼 버려 선과 악, 해야할 것과 하지말아야 할 것에 대한 상대적 분별이 불가능하게 돼버렸지요. 이런 사회적인 가치관 부재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라고 봅니다.

성적 좋고 모범적인 아이보다는 은밀한 즐거움 (? ) 을 가르쳐주는 아이가 더 마음에 드는 거지요. " - 10대들이 포르노 출연에 나설 정도로 성에 탐닉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10대는 압력솥안에 있다고들 해요. 한 줌의 김도 샐 수 없는 솥안에 갇혀 지내다가 마침내 '뻥' 하고 터진다는 거죠. 팽배한 가족이기주의 속에서 맹목적인 교육열에 시달리다가 학업에서 낙오되면 여지없이 소외를 받죠. 게다가 음란한 상업주의는 더욱 극성스럽게 학생들에게 마수를 뻗치고 있구요. 이런 상황에서 소외받은 10대들은 음란 영상물을 통해 잘못된 성행위만 배우게 됩니다.

한창 체력이 왕성한 나이에 고귀한 성보다는 쾌락의 수단인 성을 배우는 거죠. 특히 포르노는 인간임을 포기한 성 학대의 한 종류인데 이런 것을 즐겨보던 청소년들이라면 포르노를 '장난삼아' 만들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매스컴의 선정주의 극성 - 말씀하신 것처럼 청소년들이 그릇된 성의식을 가지는데는 음란잡지나 영상물들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음란물 홍수' 가 나고 있다고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얼마전에도 공중파로 방송되는 만화영화에 어른들의 성행위를 흉내낸 장면이 들어 있을 정도였죠. '인터넷 누드모델 이승희' 만 하더라도 국내 매스컴들은 앞다퉈 미국으로 건너가 노력끝에 성공한 인생으로 소개했죠. 하지만 정작 인터넷상의 이승희는 충격적이에요. 음부에 문신을 새긴채 취한 이승희의 포즈는 거의 포르노물이죠. 그런데도 매스컴이 '성공 인생' 으로 소개를 하니 청소년들도 '아, 이 정도는 음란물이 아닌가 보다' 라고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는 거죠. " 다양한 영상물 보여줘야 - 누구의 제지도 없이 혼자서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 통신이나 음란 인터넷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은 없는지요.

"기실 음란 인터넷은 포르노물보다도 더 나쁩니다.

포르노물은 여럿이 함께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터넷은 폐쇄된 공간에서 혼자보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음란 인터넷을 막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요. 컴퓨터를 하는 청소년들을 일일이 단속할 수도 없는데다 음란한 사이트를 소유한 업체들은 더욱 더 교묘한 방법으로 대중에게 접근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정부에서는 불건전 인터넷 사이트 접속차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등 노력은 하고 있지만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 추진할 것인가가 문제죠. 최근 미국에서는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는 '표현의 자유' 란 이름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결한데 이어 인터넷 사이트에도 영화.TV와 같은 등급제를 추진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데 우리도 그 귀추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 사실 상업주의가 이토록 극성을 부리는 현실속에서 음란물을 완전히 제어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이럴때 10대들이 음란물에 길들여지지 않게 해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청소년들에게 미디어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쉽고 자극적인 만화나 쇼프로만 본다면 다른 재미를 모르죠. 얼마전 저희 Y의 TV시청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엄마가 자연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여러편 자녀에게 보여준 후 음란물을 보여줬더니 재미없어 하더래요. 영상매체에 대한 가치관이 생긴 거죠. 이처럼 의도적으로라도 다양한 영상물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 정부도 오래전부터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각 사회단체들도 노력을 해 온 것으로 알지만 정작 예전보다 음란물에 대한 사회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마치 아무일도 안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요. "정부는 그동안 올바른 해결방안도 없었고 해결의지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문제는 알지만 회피해 왔는지도 모르죠. 실제 얼마전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청소년 유해업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한 고교의 절대정화구역에 단란주점만 39개업소가 들어가 있기도 했어요. 한마디로 공권력이 행사되고 있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지요. 법만 만들면 뭐하겠습니까. " 정부는 강력한 법집행을 - 이 상태로 나아간다면 곧 이성친구를 만나러 가는 아들.딸에게 콘돔이나 피임약을 들려줘야 하는 세상이 될 것 같군요.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한 때의 탈선' 으로 일생이 망가지지 않도록 해야 할 터인데요, 이들에 대한 치유책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선 인간은 다양하다는 것이 인정돼야하고 모든 것을 금지위주의 교육으로 해결하려는 자세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의 탈선을 가지고 '나쁜아이' 라는 낙인을 사회가 찍어서는 곤란하죠. 그 아이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다른 일을 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죠. 10대의 탈선을 막기 위해서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체험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성적에 방해가 된다며 자녀가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가로막고 나서는 부모들이 부지기 수예요. 이래서는 올바른 자아형성이 될 수 없습니다.

자아가 형성된 사람만이 나락에서도 떨어져서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정리 = 신용호 기자

<프로필>

▶56년 서울출생▶성심여고 (75년).성심여대 (79년.현 가톨릭대) 사회사업학과 졸업▶이화여대 대학원 사회사업학과 수료 (83년) ▶서울YMCA 성교육상담실 개설.운영 (83년).TV모니터 시청자운동본부 (85년).좋은 방송을 위한 시청자모임 (85년).건전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89년) 조직.운영▶미국 뉴욕 EVC (Education Video Center).DCTV (Downtown Communication TV) 미디어교육과정 수료 (95년) ▶프랑스 리용대학부속 크레 - 아벡스 미디어교육과정 수료 (95년) ▶현재 서울YMCA 청소년사업부장▶공저 '다매체시대의 방송편성정책' (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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