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의 TV 뒤집기]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버라이어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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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만의 천국이었던 버라이어티쇼에 여성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박미선이 ‘해피투게더’와 ‘명랑히어로’를 통해 부활을 선언했고 이어 ‘세바퀴’ ‘오늘밤만 재워줘’ 등에서 이경실·김지선 등이 드센 아줌마의 이미지를 코믹하게 풀어내며 ‘아줌마 엔터테이너’들의 바람이 공식화됐다. 아줌마들만 득세한 건 아니다. 케이블 채널의 쇼 ‘무한 걸스’를 그 뿌리로 하는 SBS의 ‘일요일이 좋다-골드미스가 간다’는 아줌마뿐만 아니라 시집 안 간 처녀들로만 이뤄진 본격 버라이어티쇼다.

확실히 1년 전만 해도 ‘무한도전’ ‘1박2일’ 등 주말 쇼와 ‘무릎팍도사’ ‘라디오스타’ 등 주중 인기 프로까지 남성만의 리그로 어쩔 수 없는 마초 분위기를 풍기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트렌드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와 박예진은 중심적 역할을 해낸다. ‘무한도전’ ‘1박2일’과는 다른, 멤버 간의 성적 긴장감을 안겨 주며 다른 쇼와는 차별된 느낌을 준다. 특히 미모와 털털함이라는 상반된 모습의 이효리는 거칠 것 없이 남성들을 희롱해 대는 전복적 여성 출연자 이미지로 여자들에게 은근한 통쾌함을 주며 오락 프로를 주도한다.

이른바 ‘아줌마 엔터테이너’의 주된 이미지 역시 수줍어하지 않고 성적 농담이나 이전에는 꺼렸던 자신의 과거 같은 것을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을 주무기로 한다. 남자들의 잘 단련된 몸을 보고 열광하며, 여자도 남자들 못지않게 성적 농담으로 맞받아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기존에 얌전한 규수 이미지였던 이승신이나 한성주 등은 그런 대찬 아줌마 기질을 끄집어내며 이런 쇼들에서 급부상했다.

‘골드미스가 간다’는 여자들의 MT 분위기를 끌어들인 버라이어티쇼라는 점에서 한층 흥미롭다. 여자끼리만의 수다와 낄낄거림이란 것이 주말 저녁 가족의 시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락 프로 시장에서 여성성의 확대라는 면에서 일보 진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자들 프로그램의 꽃이나 보조 진행자, 혹은 짝짓기 상대로서의 여자가 아니라 여자들만의 그룹이 주인공이 되고, 여자들 간에도 우정이 가능하며, 여자들의 호들갑스러움과 수다스러움도 볼 만한 것이라는 느낌을 이 쇼는 전해 준다.

일단 수적으로 늘어난 여성 오락 프로들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기대를 가지게 한다. 아직 ‘골드미스가 간다’는 나름대로 멋진 ‘골드미스’들을 모아 놓고 ‘시집 못 간 여자’라는 열등감을 자극해 ‘맞선-결혼’으로 이어지는 미션을 목표로 할 정도로 노처녀에 대한 통념을 강요한다. 시집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는 송은이는 노련한 엔터테이너로서 공적인 커리어와는 관계없이 여기서 가장 경쟁력이 없는 노처녀가 되어 버렸다.

성적 농담쯤은 가볍게 던지고 총각 출연자들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려 대는 주책스러운 아줌마 이미지를 획일적으로 몰아붙이는 ‘세 바퀴’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성격을 쇼가 요구하는 그런 이미지에 맞추지 않더라도 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오락 프로 속의 여성’이 지금보다 더 한 걸음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자신이 어떤 성격이나 조건을 가졌든 개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남자들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한 도전’하는 진취적 여성 오락 프로의 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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