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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싱글 대디’로 살아온 성우 박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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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성우 박일에겐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가족 이야기가 있다. 스무 살과 30대 초반에 두 번 이혼을 겪고 25년 동안 네 남매를 키워낸‘싱글 대디’라는 사실과, 아토피 환자였던 막내아들을 부정(父情) 하나로 완치시킨 감동 사연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성우’가 아니라‘아버지’로 만난 성우 박일과의 아주 오랜만의 데이트.

성우 박일은 전성기 시절 영화배우, 탤런트, 쇼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약했던 스타였다. 알 파치노, 마이클 더글러스, 클린트 이스트우 드 등… 지금껏 TV에서 방영된 외국 영화 속 멋진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는 죄다 그의 몫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요즘도 케이블 방송 시청률 1위를 달리는‘CSI 과학수사대’의 주인공‘길 그리섬 반장’목소리로 젊은이들에게도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최근 성우 박일은‘아토피 없는 서울시 만들기 프로젝트’일환으로 서울 동대문구의‘아토피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인터뷰를 한다는 박일. 그와의 첫 대화는 홍보 대사와 관련된 가벼운 근황으로 시작되었지만, 궁금했던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인터뷰는 오랜 시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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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로 의가사 제대한 아들 보며 죄책감과 ‘정신적 아토피’에 시달렸던 지난날

박일은 먼저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며 웃었다. 막내아들 성재씨가 인터뷰 직전에 보낸 메시지였다. “더운 날씨지만, 아빠~ 아자 아자 파이팅!”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도 아들의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나면 그는 기운이 펄펄 난다.

막내아들 성재씨는 자식들 가운데, 아버지 박일에겐 유독 깨물어서 아픈 손가락이다. 올해 스물여섯 살인 성재씨는 태어날 때부터 태열이 심했다. 사춘기 시절엔 아토피로 잠들기 전 손을 묶어 놓아야 했고, 군대에 들어갔을땐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과거로 얘기가 거슬러 올라가자,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정도로 그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들은 비록 몸이 성치 않았지만 저에게 군복 입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어요. 신체검사 결과 불합격 판정을 받고도 1년 후 재검을 다시 받았어요. 결국 3급 판정을 받고 훈련소에 입소했죠. 하지만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아들의 편지를 받은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았을때,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박일은 병원에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가슴이 아프다 못해 찢어질 정도”였다며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머리부터 등, 배까지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배어나 있는데,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온몸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어요. 아픈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참았는지 몰라요. 아버지로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괜찮다’‘곧 나아질 거다’라는 위로밖에 없었습니다. 가슴이 한없이 미어지는데… 주체할 수가 없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셨을때 두 번 울어 본 이후, 그의 인생에서 세 번째로 흘린 눈물이었다.

면회이후 아들은 증상이 전혀 호전되지 않아 곧 의가사 제대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이 마치 저 때문인 것 같았어요. 다름 아닌 제 핏줄, 제 아들이었으니까요.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제대 후 아들은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려워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어요.”

그는 자식이 아토피로 고생을 하면 부모도 정신적인 아토피를 앓게 된다고 말했다. 갈라진 피부만큼이나 정신이 황폐해지고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 상황이 이쯤 되자 더는 넉 놓고 있을 수 없어,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녔다. 아토피에 좋다는 것은 뭐든지 사들였다. 돈이 얼마나 들든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온천, 알로에 공장, 하다못해 산골짜기 숯가마까지….

“유명한 병원은 안 가 본데가 없어요. 민간요법도 안 써 본 게 없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다는 약을 써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아들은 제가 걱정할까봐 아프다고 말도 안 하는데, 그런 아들에 비해 제가 어찌나 무능해 보이던지.”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그는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아토피에 좋다는‘구찌뽕’이라는 약초를 접하게 되었다.

구찌뽕은 산뽕나무를 지칭하는 말로 잎과 줄기 등은 이미 한방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재료였다. 시쳇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지만, 뜻밖에도 이 약초는 아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정말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좋다는 약도 아들의 몸에 맞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번 만큼은 상태가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2년 넘게 이 약초를 꾸준히 먹으며 채식 위주의 식 단으로 식이요법을 병행했어요. 그랬더니 이제는 거의 완쾌될 정도로까지 좋아졌어요.”

박일은 이 대목에 이르자 감사한 심정과 함께 조심스러운 입장을 함께 밝혔다. 그의 얘기를 듣고 무작정 꾸찌뽕을 아이들에게 먹일 부모들이 있을 것 같다며 분명한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지금 매주 라디오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아토피에 관해 문의해 오시는 분이 정말 많아요. 한결같은 질문이‘뭘 먹어야 낫느냐’ 는 건데, 그런 부분은 정말 민감한 문제예요. 어떤 사람에겐 잘 맞는 것도 다른 사람에겐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약장수가 아닙니다. 아토피 홍보대사를 수락한 이유도 딱 한 가지예요. 저와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죠. 사실 자식이 아토피를 겪게 되면, 가장 중요한게 부모의 인내심입니다. 아토피는 단기간에 치료되는 병이 아니니까요. 저는 많은 부모들에게 인내심을 잃지 말라고 꼭 강조하고 싶어요. 제 경우도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 으니까요.”

경희대에서 컴퓨터 전자공학을 전공한 아들 성재씨는 지금은 임용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아토피를 앓는 동안 대인 기피증에 시달렸던 아들은 어느덧 상태가 호전되어 거의 완치 단계에 이르렀단다. 이전의 내성적인 성격도 훨씬 밝아져 요즘 박일은 막내아들과 문자 메시지 주고받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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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빈자리 채우려‘오버’하며 자식 키운 열혈 아빠의 남다른 네 남매 사랑

막내 성재씨는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이다. 박 일은 큰아들과 둘째 딸, 쌍둥이 형제, 3남 1녀를 두었다. 사실 그가‘싱글 대디’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지난 25년 동안 네아이를 홀로 키웠기에 자식사랑 만큼은 남다르다. 그는 삼십대 초반부터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아토피를 앓았던 성재씨를 위해 요리 만큼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먹였고, 딸 경아씨가 초경을 했을때는 케이크를 사다 축하 파티를 열었다. 잡지를 보더라도 건강이나 요리 면을 먼저 펼친다는 그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었지만 엄마 없는 빈자리와 상실감은 아마 아이들이 견뎌내기에 벅찼을지도 몰라요. 그래서‘여행은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다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한번은 아이들과 물놀이를 갔는데 제가 미끄러져서 머리를 다친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 몰래 병원에 가서 머리를 꿰매고 다시 아이들에게 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죠.”

박일이 아이들 키우는 동안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아이들이 절대 기 죽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스케줄에 쫓기며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잤지만, 주말이면 산에 오르고 방학 때면 바닷가와 스키장에 다니는 등 한껏‘오버’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가끔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때는 아이들에게 물어봤어요. 아이들은 단 한번도 투정이나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어요. 바쁜 아빠가 애쓰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오히려‘괜찮다’고 저를 위로해 주었죠.”

네 아이는 모두 반듯하게 자랐다. 큰아들은 서울대를 나왔고, 미술을 전공한 둘째 딸은 파주 헤이리에 작업실 겸 갤러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곳은 벌써부터 예술 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쌍둥이 두 아들 역시 한명은 외국에서 유학 중이고, 성재씨는 이미 언급했듯 임용고시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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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나이 60대, 건강 나이 40대 유지하는 우리나라 최고 성우의 자기관리 비법

그는 자식 넷을 둔 것 만큼은 행운이었다며 미소 지었다. 다만 두 번의 이혼에 대해‘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혼은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의 콤플렉스였어 요. 그것도 두 번이나. 아이들을 엄마 없이 키웠다는 부분도 미안한 일이었죠. 저는 두 번째 이혼 직후 더 이상 결혼에 실패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어요. 괜히 구설수에 오를까봐 여자들이 많은 곳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죠. 자식 넷을 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 하니까요.”

방송가에서 박일은‘바른생활 맨’으로 통한다. 일과 자식, 집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그는 영화나 TV로 잠시 외도를 했지만‘성우’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긴다. 자신의 이름을 건 성우 아카데미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까지 하고 있어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다.

“요즘은 라디오 채널과 케이블 방송 등 매체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예전보다 바빠졌어요. 저는 노력은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살아요. 사실 성우는 특별히 밑천 들 게 없잖아요. 건강한 목소리와 대본에 밑줄 그 을 펜만 있으면 되니까요. 다만 그 건강한 목소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죠.”

그는 매일 아침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단다. 담배는 이미 오래전에 끊었고, 6개월마다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으며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한다. 자신의 직업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아픈 아들도 완치되었으니 이제 박일에게 남은 바람은 뭘까.

“ 둘째 딸이 2년 전에 제짝 만나서 시집갔어요.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위와도 아들처럼 지냅니다. 어서 빨리 아들들도 좋은 배우자 만나 서로 사랑을 듬뿍 나누며 살았으면 해요. 혹시 엄마가 없어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면 배우자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살길 바라 는 마음뿐입니다.”

취재_모은희 기자 사진_임효진(studio lamp) 장소협조_Monday to Sunday(02-549-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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