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전하, 다스림에 흠이 있어 …” 직언 서슴잖은 조선의 재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정구선 지음, 애플박스, 292쪽, 1만2800원

‘왕을 꾸짖은 반골 선비들’이란 부제에서 보듯, 말 그대로 임금에게 쓴 소리, 곧은 소리를 한 선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동국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낸 지은이는 16명의 선비를 골라 이들의 행적과 글을 버무려 냈으니 특히 오늘 이 땅의 권력층에 있는 이들에겐 필독서가 될 만하다.

이들은 요즘이라도 쉽게 하지 못할 직언을 거침없이 했다. 이를 테면 명종 때 선비 조식은 수렴청정을 하며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던 임금의 생모 문정왕후를 두고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라 일컫고 그의 치마폭에 싸인 명종에게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칭한다. “100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 먹어 진액이 다 말랐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 올 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이 된 지가 오래”라며 소관(小官· 작은 벼슬아치)은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大官· 높은 벼슬아치)은 위에서 어물거리며 오직 재물만 불린다”고 정치현실을 비판한 상소문에서다.

인조 때 사람 장현광이 올린 시무책은 더 아프다. 그는 반정(反正) 4년이 되었는데도 여러 사람이 “기뻐하는 마음이 없다”는 한 목소리를 낸다고 운을 뗀다. 그리고는 이들이 신정(新政)에서 속히 효과를 보려고 급하게 여겨 불만이 있거나, 이익을 잃어 실망해서 그리 말한 게 아니라 다스림에 흠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묻는다. 그의 매운 지적은 인조 11년에 올린 상소에서 극에 달하는데 “전하께서 매양 듣고 답할 즈음에 ‘깊이 생각하겠다’ 하셨고 ‘가슴에 간직하여 잊지 않겠다’ 하셨는데 과연 깊이 생각하여 얻은 바가 있으며 잊지 않고 간직하여 몸소 실천한 바가 있습니까?”라고 질타한다.

짐작하듯이 이처럼 앞뒤를 재지 않는 목소리를 낸 이들은 당연히 재야 선비들이었다. 이들은 처사(處士) 또는 유일(遺逸) 은일(隱逸)이라 불렸는데 권력과 부, 명예를 탐하지 않고 학문을 닦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선비였다. 이들이 직언을 제대로 반영했더라면 우리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