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원가공개 반대는 잘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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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천정배(左)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당내 혼란을 겪고 있는 이라크 파병 및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에 관한 당 정책위원회 정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입장과 달리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 입장을 밝히자 열린우리당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 안팎에선 당청 간 정책조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즉각 대통령과 여당의 불협화음을 비난했다. 노 대통령과 9일 만찬에서 격론을 벌인 민주노동당은 "노 대통령의 공기업관은 천박하다"며 원가 공개를 재촉구했다.

◆난처해진 열린우리당="열린우리당이 내 소신을 확인하지 않고 (총선에서) 공약을 해 차질이 생겼으니 다시 상의하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접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10일 정례 정책회의에서 천정배 원내대표는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당정 간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파장을 줄이려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청회를 통해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듣고, 당정 협의를 다시 열어 어떤 방안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열린우리당은 총선 때 '공공택지 조성원가 공개 및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검토'를 공약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와의 당정 협의에서 전용면적 25.7평 이하 주택에 대해 원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려는 기류를 보였다.

이후 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자 당 지도부는 "공약을 단칼에 백지화한다는 것은 아니다"(천정배 대표)고 밝혔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 핵심 인사는 "대통령이 최근 지도부와 만나 원가 공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고 말했다.

소속 의원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한 원내부대표는 "주택공사를 장사하는 개념으로 보는 건 잘못"이라며 "대통령의 언급이 성급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노영민 의원은 "분양원가 공개는 경제원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이 더 이상 언급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노 대통령의 언급을 고려해 추후 시장친화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공세 나선 한나라당="공공택지 및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우리의 총선 공약이기도 하다"(이한구 정책위 부의장)고 밝힌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한선교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 대통령의 원가공개 반대 언급은 서민을 위한 공공 임대아파트를 짓는 주택공사도 이문을 따져야 한다는 말"이라며 "노 대통령이 어느새 철저한 신자유주의자로 변했느냐"고 쏘아붙였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논평에서 "원가 공개가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이 판명됐다"며 "국민의 주거권 실현이란 기능을 맡은 공기업에 대해 대통령이 '장사' 운운하며 원가 공개 거부 논리를 펴는 것은 국헌을 문란케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탁.이가영 기자 <sunty@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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