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57. 음악비평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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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인이 발행한 최초의 음악잡지는 홍난파가 1919년 도쿄(東京)에서 출판한'삼광(三光)'.이 때부터 우리의 음악평론도 싹트기 시작했다.초창기 우리의 음악평론은 작곡가.연주자들의'부업'처럼 여겨져 전문성과 독립성을 띠지 못했다.

1925년 음악잡지'음악계'를 창간한데 이어 국내 최초의 음악산문집'음악만필'(1938년)을 펴낸 홍난파 외에도 당시 평론가로 활동했던 음악인으로는 계정식.김관.정훈모.홍종인 등이 있다.이때는 작품평은 고사하고 개별 연주회에 대한 비평도 전무하다시피 했다.아직 음악회 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여서 비판보다는 계몽에 비중을 둔 글이 많이 발표된 까닭이다.따라서 연주자 개인보다 악단(樂壇)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조감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1930년대 에'음악평론'잡지를 창간한 김관,'음악과 문화'(1948년)를 출간한 임동혁,지금까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박용구(朴容九.83)씨 등이 해방공간에서 필봉을 날리던 음악평론가들이다.

한국 음악평론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박용구씨는 음악 뿐만 아니라 무용과 같은 예술분야를 넘나들면서 특유의 감각적인 필체를 전개해왔다.해방 직후 발표한'아동음악 교육론'에서“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불식된 우리 고유의 민족적 음악 감수성을 아동음악 교육으로부터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일찍이 작곡가 윤이상.백병동.강석희.황병기씨 등의 전위적인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朴씨는 49년 해방공간의 음악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아낸 첫 평론집'음악과 현실'을 출간,초판이 보름만에 팔려나가는'이변'을 기록했다.그러나 당시 월북 음악가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판금조치를 당했고 이 때문에 50년대를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朴씨는 76년 음악펜클럽을 창설,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으며 81년부터 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

음악펜클럽에서 朴씨는 이상만.이강숙.이순열.김원구.백병동.김정길.강석희.김영태씨 등 내로라하는 음악 논객(論客)들을 회원으로 두고 지금까지도 음악평론계의 대부(代父)또는 정신적 지주로 군림해오고 있다. 1950년대 음악비평계에선 전문 음악평론가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음악에 대한 취미와 글쓰는 재주만 있으면 평론활동이 가능했다.50년대 일간신문에서 평론가로 활동했던 오화섭과 유한철이 그 대표적인 예다.당시 박용구씨가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는 음악잡지보다는 일간 신문이 음악평론의 주무대였다.박용구.유한철.이성삼.김형주.이강숙.김정길.이상만씨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이강숙씨는 66년 한국일보에'한동일 귀국 피아노 독주회평'으로 평론가로 데뷔한다.또 일본서 귀국한 박용구씨는 조선일보.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음악계의 여론을 이끌어갔다.김형주.이상만씨는 동아일보,김정길씨는 경향신문에 각각 고정란을 확보하고 오랫동안 평론활동을 전개했다.작곡가 출신인 김정길씨가 한때 평론가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1970년대 음악평론계에서'월간음악'의 창간은 빼놓을 수 없다.지금은 폐간되고 없지만 이 잡지는 이유선.이성삼.유신.김원구.한상우.한명희씨등의 활동무대였다.70년대 후반'월간음악''음악세계''공간''뿌리깊은 나무''신동아'등의 잡지 음악평란은 일간신문의 평란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맡았다.이강숙씨는 77년 귀국후 평론활동을 재개하면서 작곡동인'제3세대'를 음악계의 전면에 부각시키는 등 연주 못지 않게 작품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1980년대 는 한국 음악평론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기록된다.이강숙씨의 평론집'열린 음악의 세계'출간은 음악평론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이책의'세례'를 받은 젊은 음악도들이 하나 둘씩 음악평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또 81년 서울대음대에 국내 최초의 음악이론 전공이 개설되면서 신예 평론가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게다가'객석''음악동아''피아노음악''음악교육''음악춘추''음악저널''낭만음악'등 음악잡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창간되었다.그후 김춘미.민경찬.박선희.주성혜.홍승찬.김학민.김방현.김원명.김정희.이소영.유영민.문옥배씨 등이 음악 이론을 배경으로 참신한 시각을 가미한 평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민경찬씨는 87년'음악에서의 남북분단'이라는 글을 발표해 월북 작곡가 김순남.이건우등에 대한 해금조치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했다.또 이소영씨는 최근 소리꾼 장사익의 인기비결을 분석한 글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음악저널'의 창간과 함께 탁계석.김규현.조진형씨 등이 다소 거칠지만 신랄한 비평으로 음악계의'뜨거운 감자'를 요리해오고 있으며,국악 쪽에서는'객석'의 예술평론상으로 데뷔한 이인원.윤중강.송혜진씨,국악과 양악의 영역을 애써 구분하지 않는 진회숙씨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설명>

사진 왼쪽부터 앞줄은 최정호.박용구.강석희.이상만.이강숙씨,가운데는 김원구.김춘미.한상우씨 그리고 뒷줄은 백병동.김정길.김영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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