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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덕성여중 교장이 말하는 ‘사교육 없는 학교’ 성공 비결 다섯 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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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일 오후 2시 서울 안국동 덕성여중 1학년 교실. 유민정(13)양을 비롯한 175명이 방학 중인데도 모두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학기 중은 물론 방학 동안에도 학생들이 학원이나 개인 과외를 끊고 학교에서 모든 공부를 해결하는 ‘사교육 없는 학교’다(본지 2월 4일자 1면). 전교 1등인 유양은 “학원에 가는 이유는 수준별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인데 학교 선생님이 더 잘 가르쳐 주셔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공교육 살리기의 새 모델을 실험 중인 김영숙(57)교장은 이날도 오후 11시까지 학교를 지켰다.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만 끝나면 사교육으로 달려가는 게 현실인데 그런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둘 수 있는 비결은 뭘까. 김 교장에게서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노하우를 들어 봤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통해 공교육 살리기에 나선 김영숙 덕성여중 교장(中)이 3일 방학 기간에도 특별 수업 중인 3학년 1반 교실을 찾아가 격려한 뒤 학생들과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김 교장은 이 학생들에게 국어교과를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조문규 기자]


1 학교를 세일하라 학부모·학생 설득이 제1 관문

 학부모와 학생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김 교장은 매학기 ▶학원 간다고 빼 달라고 하지 말라 ▶선생님 질 나빠서 못 배우겠다 하지 말라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서 뭐가 부족한지 철저히 지적해 달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낸다. 답이 없으면 직접 학교로 모셔 수업을 참관하게 하고, 교장의 교육관을 설명한다. “아이들 과외비 대느라 생활이 빠듯하시고 힘드시겠다. 교장과 교사를 믿고 맡기시라. 책임지겠다”며 따뜻하게 말한다. 다기에 우려낸 찻상에 다과를 받아든 학부모들은 반신반의하다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다양한 수준별 심화 수업을 다 듣고(한 달 20만원) 전 과목 학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장점에 학부모들은 학교를 믿고 대부분 사교육을 끊는다. 저소득층 50명에게는 아예 학비를 면제해 준다.

2 학생을 분석하라  학생 실력 알아야 지도 쉬워져

 덕성여중은 전교생 335명의 ‘개인 카드’를 갖고 있다. 이 카드는 매일 시간대별로 담당 교사들이 업데이트한다. 수업시간에는 담당교사가 특이사항을 적고, 수업이 끝나면 자습실 담당 교사가 파일에 학생의 특징을 기록한다. 올해부터는 여기에 성적을 합산해 아예‘맞춤형 개인 파일’로 만들 계획이다. 중간·기말고사와 본인의 희망을 바탕으로 방과 후 수업(내신종합반) 때 상·중·하 3개 반으로 편성한다. 학부모들과 상담 때는 피상적으로 하지 않고 철저하게 이 개인 파일을 토대로 자세히 한다. 그래야 “아, 학교가 내 아이를 정성으로 돌보고 있구나”하는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다. 김길용 교사는 “학생 실력을 파악하면 지도하기가 더 쉬워진다”고 말했다.

3 학생에게 맞춰라  교사·학생 간 맞춤형 팀제 도입

 김 교장은 7년 전 덕성여고 국어교사 때 민간기업 ‘팀제’를 도입해 응용했다. 프로젝트별로 이름을 붙이고 임무가 끝나면 해체했다. 한 교사와 학생이 여러 팀에 소속될 수 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선행학습과 보충학습 두 가지 이유를 파악해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맞추기로 했다. 정규 수업 전후로 ‘우수학생(탐구반) 프로젝트’와 ‘부진학생(부진반) 프로젝트’를 구분해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 맞춤형 수업을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학년당 10~20명이 참가한다. 전교생이 참가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에서는 상·중·하 3개로 반을 나눠 내신 보충수업을 한다. 통합논술팀과 연계해 독서기록장을 작성하는 독서팀도 운영했다.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외부강사 프로그램에는 김훈·장영희·정호승 작가를 불러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4 적성을 살려줘라  재능 키우는 ‘1인 1기 프로젝트’

 김 교장은 학부모에게 제자들의 예를 많이 든다. ‘꼴찌였던 학생도 교수로 만든 사례’를 들면서 학생 개개인에 맞는 가능성을 찾아내고 살릴 수 있다고 설득한다. 김 교장은 “교육을 빨리 튀겨내 뻥튀기할 생각으로 하지 말고 나이와 단계에 맞춰 학생을 관찰하고 그 가능성을 잘 파악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세, 신발, 머리 모양 등 작은 것까지도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면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화제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장은 3월부터 ‘1인 1기 프로젝트’를 도입한다. 전교생이 종로구청 관할 체육관에서 일주일에 1시간 검도를 배운다. 모두 자율이다. 검도가 싫은 학생은 오케스트라나 창작 미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5 교사도 공부하라  연구에 필요한 모든 자료 보조

 김 교장은 “교사들에게 자신의 전공에 최고의 전문가가 돼라”고 주문한다. 내년부터는 대학 교수나 민족사관고등학교처럼 교사 1인 1교무실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 일단 올해는 학년당 1개씩의 교무실을 만들 계획이고, 연구에 필요한 모든 책을 다 보조하고 있다. 매일 아침 교무회의 때는 22명의 교사들에게 신문에서 읽은 좋은 기사와 책을 추천해 준다. 교사들은 방과 후 수업에 시간당 3만원을 받는다. 연구나 학생 지도 등 수업 이외 초과 근무 수당은 아예 없다. 김 교장은 그런 교사들에게는 점심을 사주며 격려하고 고충을 듣는다. 하지만 판공비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재단에서 내려오는 돈 연간 4억8000만원은 모두 교육활동을 위해 써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원진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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