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인도다!] 4. 비즈니스가 우리의 새 종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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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타모터스 기술자들이 1998년 말 뭄바이 북쪽의 푸네 공장에서 독자개발한 승용차 '인디카'1호 주위에 모여 있다. 타타모터스는 늦게 뛰어든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스즈키와 합작한 마루티, 현대차에 이어 점유율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푸네 AP=본사특약]

델리에서 '타지마할'로 가는 고속도로. 느림보 트럭을 밥먹듯 추월해 보지만 도무지 속도가 안 난다. 200㎞를 가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옆에 탄 가이드는 "목숨을 걸고 곡예 운전하던 왕복 2차로에 비하면 지금의 4차로는 천국"이라고 위안했다. 하지만 세계 으뜸의 관광 명소로 가는 길이 이래서야 어디….

*** 개방 정책 경제에 활력

아잔타의 불교 유적지, 델리.아그라의 이슬람 유적지, 바라나시.카주라호의 힌두 유적지…. 인도엔 세계인들이 돈 보따리를 풀고 갈 '보고(寶庫)'가 사방에 널려 있다. 이걸 모두 돈벌이로 연결시킨다면 관광으로 먹고사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못지않을 것이다. 도대체 인도 사람들은 돈벌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길 닦고 호텔 시설만 웬만큼 갖추면 앉아서 달러를 긁어모을 수 있는 관광업을 여태 방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네들 계산(인도 이코노믹 타임스 조사)으로도 관광업의 경제적 효과는 그렇게도 자랑하는 정보기술(IT) 분야를 능가할 정도다. 호텔방을 하나 지으면 9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종업원이 받는 1루피의 팁은 10여 단계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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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IT 말고 의약.직물.보석 등을 빼면 변변한 산업이 별로 없다. 한마디로 인도인들은 아직 '돈맛'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할밖에. 그러나 달리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굵직한 해외자본을 유치해 관광업에 눈뜨기라도 한다면 돈벌이는 시간 문제다.

제조업 쪽은 또 어떤가. 인도는 소프트웨어나 강하지, 제조업은 아예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는 나라인가. 그러나 제조업의 역사를 보면 한국 정도는 어림도 없다.

지금도 델리 시내를 달리는 '앰버서더'라는 구닥다리 자동차가 50년 역사의 '메이드 인 인디아'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인도 거리를 휩쓰는 현대차보다 훨씬 앞섰다는 얘기가 아닌가. 싱크탱크인 국가응용경제연구소(NCAER)의 라제쉬 차다 박사는 "뒤떨어진 인프라, 경직된 고용시장, 투자를 막는 세금제도 등이 얽혀 사업하려는 의욕을 막았다"고 말했다. 인도에 진출한 국내 기업 관계자들은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하고 시키는 것만 한다"며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오랜 사회주의 경제 체제 속에 힌두 특유의 종교관까지 가세돼 악착같이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하는 제조업 발전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이를 바꿔 말하면 '비즈니스 마인드'에 불을 지펴 작심하고 달려든다면 성장 폭발력은 메가톤급이라는 얘기도 될 수 있다. 지금 세계가 인도를 주시하는 것도 그 불씨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를 풀무질하는 게 바로 '시장경제식 개방과 개혁'이다.

정부 규제만 풀어도 '떼돈'이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인도 동부의 크리쉬나 고다바리 분지가 좋은 예다. 정부가 최근 규제를 완화해 그동안 22개 지역에만 허용한 시추권을 91개로 확 늘렸다. 그러자 릴라이언스가 크리쉬나 분지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전을 찾아냈다.

제조업 쪽에서 선두 그룹을 형성한 건 타타나 릴라이언스 같은 대기업들이다. 이들은 텔레콤.전력.자동차 등 돈줄로 떠오른 사업이다 싶으면 글로벌 기업에 뒤질세라 번개처럼 공략하고 있다. 이들의 사업 수완은 돈버는 방법을 배우는 '교과서'가 돼 다른 기업들에 확산하고 있다. 타타그룹 라탄타타 회장은 기자에게 "인도 제조업은 지난 2년간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잠재력을 잘 보여줬다"고 자랑했다. 그룹 자회사인 타타모터스가 최근 한국의 대우상용차를 사들인 것도 쭉쭉 뻗어나가는 인도 제조업의 단면이라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인도인들에게 점점 '새로운 종교'가 돼가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첫째가 휴대전화와 인터넷이다. "닫혔던 정보를 소통시켜 이윤 추구와 시장경제.글로벌스탠더드가 뭔지 눈뜨게 하는 주인공(삼성전자 김규출 소프트웨어연구소장)"이라는 것이다.

*** 휴대폰 사용자 1년새 10배

인도의 정보통신 혁명은 정말로 '혁명적'이다. 지난해 초 인도의 휴대전화 가입자는 300만명뿐.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3000만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사용료를 내리고 민간에 사업을 개방했더니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 또 이젠 북동부 비하르의 낙후지역이나 남부 케럴라주의 수상가옥에서도 인터넷을 즐긴다고 한다. 돈맛과 인터넷, 여기에다 '시장경제의 피'가 새로 더해진 인도의 질주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뉴델리.뭄바이.방갈로르.첸나이=이장규 경제전문대기자.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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